<따뜻한 김포를 만드는 청소년> 21

이민수

통진두레문화센터 팀장

지난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마다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카페나 음식점에 모여 앉아 오밤중이 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노래방과 영화관에서도 코로나 이전과 비슷한 밀집도로 모여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 대부분의 집합 제한도 완화되어 9명, 10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 됐다.

이렇듯 주변인들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밀접 접촉 또는 교류가 가능해지고, 개개인의 삶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 지금 이 시기가 따뜻한 마을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떨어져 있던 개인들이 다시 뭉쳐지고 있는 것처럼 마을 안에서도 다시금 소통의 장을 열 때이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다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세요

이따금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인터넷 게시글 중 꽤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동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메모지 사진이다. 어린이가 이웃들을 위해 직접 쓴 쪽지와 손소독제를 엘리베이터 한쪽 면에 마련해놓은 일,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한 주민이 격려 쪽지와 함께 간식바구니를 달아놓은 일 등이 인터넷에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을 위해 한 자 한 자 쪽지를 쓰고 손소독제와 간식바구니를 준비한 정성과 사랑이 모니터를 넘어 나에게도 뜨끈하게 전해지는 미담들이었다.

개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시되는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는 소통의 장이랄 것이 딱히 없다. 옛날같이 개인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마을 회관이 있으며, 주민들이 심심할 때마다 한 장소에 모여서 함께 요리를 해 먹거나 놀이를 즐기는 진짜 ‘마을’스러운 곳은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렇게 생판 남들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도시·현대인들도 엘리베이터만큼은 매일 남들과 함께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동수단이다.

위에서 말한 미담들처럼, 엘리베이터에 우리 아파트 혹은 우리 동네 전용 소식판을 만들어 각자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공유해보는 건 어떨까?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공지판처럼 ‘우리 동네 안방 뉴스’ 판을 만들어 각 가정에서 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붙여놓으면 다른 이웃들도 읽어 보고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다. 이렇게 엘리베이터를 통한 간접 소통은 같은 동에 사는 이웃끼리 재미있게 안면을 트는 초기 방법으로 좋을 것이다. 또한 엘리베이터에는 CCTV가 있기 때문에 게시판을 쾌적하게 유지하기도 쉬울 것이다.

또 한 번은 어떤 지역에 고양이 사진이 크게 인쇄된 전단지가 붙었는데, 누가 고양이를 잃어버렸나 걱정하며 글을 읽으러 다가간 사람들은 모두 헛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전단지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기 위해 붙인 전단지가 아니라 본인 고양이가 자기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귀여우니 모두가 봤으면 좋겠다는 자랑의 마음에서 붙인 전단지였던 것이다.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인간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동물 친구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봐도 너무나 귀여운데 진짜 주인들은 그 친구들이 얼마나 더 예뻐 보일까. 말 그대로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이 마음을 담아 엘리베이터에 마련된 ‘동네방네 소식통’에 본인의 귀여운 동물 가족들을 자랑해보자.

‘랜선 집사’라는 말이 유행하듯 요즘 사람들은 귀여운 동물 친구들을 보며 기분을 힐링한다. 누구는 자랑해서 좋고 누구는 힐링해서 좋고 누구는 자랑당해서 좋고 일석삼조가 아닐까 싶다.

 

자주 봐야 정든다

200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아나바다 운동’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아나바다’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의 줄임말로 개인이 안 쓰는 물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활동을 말한다. 보통은 환경을 위해 자원을 아껴쓰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활동이지만, 지금 우리는 이웃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마주하고, 한 번이라도 더 인사를 나누고, 서로에게 한 번이라도 도움을 주는 사이가 되고자 아나바다 운동을 하려 한다.

요즘은 당근마켓이라는 동네 물건 거래 서비스 플랫폼이 큰 히트를 치면서 동네 이웃 간 거래가 활발해졌다. 이러한 시류를 잘 이용한다면 따뜻한 마을을 만드는 데 아나바다 운동이 좋은 발화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나바다 운동 외에도 ‘우리동네 벼룩시장’, ‘우리동네 나눔장터’ 등 약간씩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행사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행사를 하는 목적은 단 하나, 이웃사촌들끼리 얼굴을 마주보고 말 한 마디씩 나눌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만약 우리 동네에서 ‘우리 마을 벼룩시장’이 열린다면 나는 직접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며 판매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베이킹에 소질 있는 우리 둘째 딸과 함께 빵이나 쿠키 등을 만들어 무료로 나눔을 하거나 저렴한 가격에 판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우리집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는 붕어빵 틀을 가져다가 붕어빵 나눔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물품 나눔 행사뿐만 아니라 재능 나눔 행사도 좋을 듯하다. 우리 동네 전시회, 우리 동네 음악회 같은 재능 교류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인간이 잘 자라려면 칭찬과 관심도 필요한 법이다. 또한 소소하게 취미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맞는 부담스럽지 않은 작은 무대가 필요할 수 있다.

뭐가 되었든 하나의 정기적인 동네 축제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긍정적인 마인드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렇게 서로에게 서서히 물들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 마음 속 ‘우리 동네 맛집’ 찾기

마지막으로, 우리 동네 맛집 찾기를 제안한다. 아무리 자기가 사는 동네라고 해도 골목 구석구석, 상가 구석구석을 모조리 둘러 본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가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산책 겸 아직 발을 디뎌보지 못한, 우리 동네 곳곳을 돌아다녀보는 것을 추천한다. 몇 년을 살았지만 있는지도 몰랐던 분위기 좋은 작은 카페를 발견할 수도 있고, 고소한 냄새가 폴폴 나는 유기농 식빵집을 발견할 수도 있다. 또 친절하고 센스 있는 플로리스트가 운영하는 예쁜 꽃집을 발견할 수도 있고, 흥미로운 독립 서적을 취급하는 작은 동네 책방을 만날 수도 있다. 그 중 내 마음에 쏙 드는 가게 하나만 있어도 우리 동네에 대한 애정이 생길 것이다. 동네에 대한 애정은 이웃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행복하고 온화한 마음이 모이고 모여 따뜻한 마을을 이루는 것이다.

 

따뜻한 마을을 만들기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우리 마을에 작은 애착을 붙이고 그것을 키워나가는 게 가장 첫 번째로 할 일이고, 두 번째는 그 애착을 나의 이웃사촌들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순수한 발상일지라도 따뜻한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여러 명이 마음을 모아 무작정 실천하고 제안해 보자. 그것이 작은 변화의 불씨를 지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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