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교통의 중심지였던 조강...

통일 시대 대비한 열린공간으로 거듭나

 

물을 품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배를 띄울 수 없는 그 곳 한강하구. 한국전쟁 이전 한반도 번영의 상징이었던 한강하구는 이제 금단의 구역이 됐다.

강원도 태백산맥 금대봉에서 발원해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한강의 최종 종착점은 서해와 만나는 강화만, 우리는 이 일대를 한강하구라 부른다.

물에는 경계가 없다. 하지만 한강하구에는 남과 북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에서 강화군 서도면 말도로 흐르는 67㎞ 이 구역은 또 하나의 비무장지대(DMZ), 한강하구 중립수역이다.

중심을 벗어난 주변과 경계 지역은 차별과 배제, 그리고 위험이 상존하는 설움의 공간이다. 한강하구는 한강 상류에서 흘러온 쓰레기와 하수, 비점오염원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강하구 주민들은 남북이 총부리를 겨눈 대치 상황에 긴장을 늦출 수 없고 국가 안보란 명분 아래 이동조차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거세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이 개장하며 북한을 넘어 대륙으로 뻗어가는 우리의 기상이 꿈틀거리고 있다.

대한민국 북쪽 끝이 아닌 북으로 향한 시작점인 한강하구. 그래서 평화의 교두보, 생태계의 보고로서 열린 공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한강하구의 원래 이름은 조강이다. 할아버지 조(祖)자와 강 강(江)자가 합쳐진 조강은 할아버지의 강, 즉 조상의 강이란 뜻이다. 조상들이 후손들을 두루 아우르고 품듯 조강이 남측의 한강과 염하, 북측의 임진강과 예성강을 넉넉히 품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상들의 강이란 뜻으로 ‘조강(祖江)’이라 불리는 곳. 이곳이 남북평화시대를 맞아 경계 지역의 설움이 아닌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한 열린 공간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 민물과 짠물이 뒤섞이는 기수지역

조강은 하굿둑으로 막힌 우리나라 다른 강들과 달리 한강과 임진강에서 내려온 담수와 서해 앞바다 해수가 만나는 기수지역이다.

기수지역 특성을 갖춘 이곳에는 민물에 사는 담수종과 바다에 사는 해산종, 민물과 바다가 섞이는 곳에 사는 기수종, 민물과 바다를 오가며 사는 회유종이 고루 뿌리내리고 있다.

윤순영 한강하구살리기시민연대 상임대표는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해 500km를 쭉 타고 내려오다 보면 그 물은 독을 품고 오염되죠. 그런데 내려오면서 임진강 물을 끌고 다시 바다 쪽으로 내려가다가 조강을 만나는데 조강을 만날 때 오염된 물이 해독돼요. 그래서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탄생합니다. 그래서 조강의 의미를 저는 시작이라고 보는 거예요. 또 엄청 짠물도 조강에서 순화, 중화가 됩니다. 물 염도가 줄어들면 모든 어류 서식환경이 좋아지죠. 짠물보다 주로 기수지역에서 어류들이 산란을 많이 하니까 종의 번성이 굉장한 거죠. 생명의 강"이라고 조강을 정의한다.

 

▣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한 공간, 조강

조강은 또 다른 측면에서 조상, 즉 '시초'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새 생명과 새로운 자연환경의 탄생이 바로 조강에서 비롯된다.

물길은 문명의 길이다. 한반도 중심을 관통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조강과 그 주변 지역은 한반도 그 어느 곳보다 역동적이었다. '코리아'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고려시대 무역항 벽란도 역시 예성강 하류인 조강과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 충청, 전라에서 올라오던 모든 세곡선들이 수도 한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이 바로 조강이다.

문화와 교통의 중심지였던 조강. 그 화려함은 이제 역사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마을로 흐르는 조강의 한 지류 끝에 '조강포'라고 적힌 비석 하나만이 외롭게 서있다. 어부와 어선들, 상인과 무역선, 세곡선이 뒤엉켜 조용할 틈 없었던 조강리는 이제 적막함으로 가득하다. 전쟁의 상흔, 철조망에 가로막힌 조강은 발을 담가 볼 수 없는 가깝고도 먼 곳이 됐다.

조강 너머 북녘에는 황해도 개풍군 조강리가 있다. 이처럼 남과 북이 같은 마을 이름을 쓸 만큼 조강 일대는 하나의 문화권이자 생활권이었다. 조강 기슭 한 가운데 솟아 오른 애기봉에 바라 본 개풍 조강리는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듯 가깝다.

황강포, 홍천포, 강령포, 마근포 등 조강 일대 8개 남북 포구들은 자취를 감췄다. 남북 분단으로 그어진 어로한계선은 그나마 남아 있던 어민들을 강과 바다로부터 등지게 만든다.

김포와 일산 사이를 흐르는 한강에는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선착장이 8곳이지만 대부분 제대로 된 포구 기능을 못하고 있다. 위로는 조강, 즉 한강하구 중립수역으로 막혀 있고 아래로는 각종 대교와 신곡수중보로 막혀 있는 한강. 어업 환경은 날로 나빠지고 있다.

 

▣ 평화로운 도시, 김포가 새롭다

김포시는 민선7기가 시작하면서 한강하구 일대를 집중 조명, 미래 100년 먹을거리로 삼는 원대한 계획을 수립했다.

한강하구 평화생태관광자원 개발,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조성, 평화누리길 걷기, 세계평화문화축제 등 일련의 과정을 전개하며 남북평화시대 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기념비적인 행사는 '물길열기'다.

김포시는 전류리에서 어로한계선까지 물길항행에 이어 지난 10월에는 대명항에서 유도 앞까지 자유항행 행사를 전개했다.

특히 김포 대명항에서 한강하구 중립수역 500m 전방까지 왕복하며 진행된 '평화의 물길 열기' 행사는 전쟁 이후 70여 년간 민간의 발길이 닿지 못했던 이곳에 처음 있는 일로 매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행사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한강하구 조강포구는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활력이 넘치는 공동체였지만 민간선박의 항행이 가능한 정전협정에도 불구하고 삶의 터전이 냉전에 의해 멈춰야 했다”며 “잃어버린 활기와 일상을 되찾는 것은 남북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다. 이곳의 생태와 문화를 함께 조사하며 교류할 수 있다면 남북협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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