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새해가 시작됐다. 창밖에는 눈 대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겨울 눈과 겨울비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다. 눈이 내리면 더 아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생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바뀌는 것 같다. 같은 비를 봐도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겨울이라는 낮은 온도의 체감 때문이 아니라 이 음습한 계절이 주는 알 수 없는 바람의 무게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해 겨울도 그랬다. 추위 때문에 외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텅 빈 것 같은 도시와 징글맞게 귀를 파고드는 외국 국적의 캐럴과 나와 동떨어진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세상이 무서워질 때쯤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완행을 타고 목적 없이 상·하행을 왔다 갔다 하던 시절.

사람들이 무서워서 도피한 곳에서 내가 나를 무서워하는 아이러니와 만나곤 했다. 어쩌면 내 근처에서 머물러 있는 것은 반죽이 되지 못한 채 걸러지고 있는 잡티와 같은 것이 나의 실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나의 반죽으로 부풀어 올라 빵이 되거나 다른 무엇이 되면 좋을 텐데 하나의 반죽이라는 것에 원초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그 거부감의 실체를 알기까지 지난한 세월이 흘렀고 여전히 나는 실체를 찾는 일에 몰두하는 중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뒷면의 세상을, 모든 것을 다 모를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모를 것은 타인이 아닌, 내 안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별이 되기도 하고, 구름이 되기도 하고, 어둠이 되기도 하고, 작부의 가녀린 목선처럼 아슴아슴한 추억을 곱게 화장으로 가린 내가 되기도 하고, 때론 괴성을 내지르는 광야에 버려진 고사목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그 일상의 변화를 내가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한 해가 간다는 말의 반대는 한 해가 온다는 말이다. 가는 것에 천착할 것인가, 오는 것에 방점을 둘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이 겨울이 나를 좀 더 완숙한 사람으로 만든다. 이 계절에 나는 무엇으로 나를 지탱할 것인지 차곡차곡 내리는 비를 쌓으며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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