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사설·기고 발행인칼럼
[발행인 칼럼] 한강 철책 개방의 퇴보
박태운 발행인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김포시세에 안 맞는 두 가지가 중전철 문제와 한강 철책선 문제다.

2015년 홍철호 전 국회의원이 국방의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한강 철책에 통문을 4개 만들어 낮에는 시민들이 활용하고 밤에는 민간경비원과 군인이 함께 관리하는 것을 당시 군 합동참모부에서 승인한 바 있는데, 최근 한강 철책선 일부 구간 외 철책을 철거하면서 시민출입 통문은 온데간데없어졌다.

2015년에는 출입 가능으로 통보되었던 통문이 세월이 흐르고 김포 도시 규모도 확장됐는데 세월이 거꾸로 흐른 느낌이다.

김포시가 저간의 사정을 시민에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는 대목이다.

한강하구에 철책이 설치된 것은 1970년대이다.

51년이란 긴 세월 동안 김포와 한강은 눈으로만 바라보는 사이가 되었다.

격리된 세월의 아픔을 수시로 접해보는 한강 철책선은 그래서 김포의 슬픈 눈망울이다. 최근 두 겹의 한강 철책 중 육지 쪽 철책을 일부 구간 철거하기로 결정되어 시작 나팔을 불었다.

한강 외측 철책선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 한강 하구 철책 선상의 변화는 전무하다.

철책선은 그대로 건재하고 두 겹이 한 겹으로 남아있게 된다.

한강 철책선은 2001년부터 철거 계획을 시작하여 10여 년이 지난 2012년 4월 9일 육군 공병대에 의하여 김포대교 지점에서 서울 측으로 1.3km 구간을 최초로 철거한 역사적 행보를 시작했다는 의미는 당시 조만간 한강 철책선이 하성 전류리까지는 빠르게 제거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남의 둔치는 저녁노을과 낙조를 조망할 수 있다면 김포의 둔치는 새벽, 한강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데 더 큰 매력이 있다.

유럽 사람들은 낙조를 보고 살지만 동양 사람들은 일출을 더 크게 생각한다. 한강상에 떠오르는 그 일출을 보는 느낌이 이채로운 것을 김포에서 신년 일출을 본 사람들은 기억한다.

한강 내측 강안이 환하게 밝아지며 기다란 꼬리를 찬란한 연무처럼 보여주는 신비는 장관이다.

철책을 제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추진되었던 한강 수중의 최첨단 감시장비인 소나(영국산)의 문제가 김포시와 삼성SDS 간의 소송전으로 10년 동안 발목이 잡혀 지연된 부분도 있지만, 군사안보 특성상 7종의 감시 장비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한강 수중에서 반경 800m 물체 탐지라는 기능이 한강하구의 밀물, 썰물의 영향에 의해 명개흙으로 분류되는 펄의 영향으로 반경 400-500m뿐이 탐지되지 않는 현상으로 설치 부적합 판정을 받아 설치 당사자인 삼성SDS와 김포시의 긴 소송이 있었다.

준 돈을 되받는, 어차피 김포시가 이기는 소송임에도 시민의 희망과 관심을 방기한 대법원까지의 긴 소송을 최근에야 종결지었다.

소송에서 중도 합의 등등의 선택과 김포 철책선을 조기에 정리하여 시민이 활용할 수 있다는 가치와의 비교를 선택하는 부분도 고려했어야 한다.

이러한 정무적 선택은 김포시장이 여론을 수렴하고 현명한 조치들을 강구했다면 미련스럽게 10년을 넘게 끈 소송으로 가재도 게도 다 놓친 어리석음이 되었다.

왜냐하면, 2015년 홍철호 전 국회의원이 초임 국회의원으로 한강 철책선 제거를 목표로 국방위원이 되었고 당시 국방위원장인 황진하 의원과 유승민 의원의 도움으로 초선 의원으로서는 엄두도 못내는 국방위 자체 내에 ‘한강 철책선 제거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기무사 출신 송영근 의원이 소 위원장을 맡아 여·야가 합심한 철책 제거라는 명분을 만들어 냈고, 한강 철책선 ‘개방’이라는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시 군의 안보와 방위를 유지시킬 다수의 대안을 강구하면서 본격적 철책 제거 시기를 조율시켰고 당장은 김포시민의 염원인 한강의 개방을 어떻게 일궈내느냐의 고심이었다. 한강 철책선 제거 구간에 4개의 통문(자동차 왕래 가능한)을 만들어 일출 시부터 시민에 개방하면 시민이 한강으로의 적 침투를 막는 지킴이 역할이 되고 일몰이 되면 시민들의 퇴장과 군과 시민 경비원이 함께 경비와 안내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을 합참이 승인했는데, 삼성SDS와 김포시의 소송 10년 동안 이 부분이 사라졌다.

철책 한 겹은 벗겨냈지만 한강의 시민 활용은 당분간 없게 되었다.

김포가 농경지 평야 시대에서 50만 대도시 진입을 1~2년 앞에 두고 서울을 방어하는 곳에서 이제는 김포를 방어 방호하는 시대로 작전 개념이 바뀐 모습은 한강 철책선 제거가 그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포라는 도시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그동안 김포지역은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으로 재산적, 정신적 피해를 많이 입은 곳이다.

지금도 살 집 한 채를 지으려 하면 군사 동의를 받아야 한다. 북쪽 끝자락에는 신분을 밝혀야 출입 가능한 군사통제지역도 존재한다.

김포를 지나면 한강하구이고 그 위쪽은 북한이니 교통 또한 불모지대다. 그 현상이 서울과 접촉한 수도권 도시 중 유일하게 중전철이 없는 도시다.

과거도 지금도 김포는 많은 부분에서 뒷북행정이 있었다.

“통문 4개소 설치〟도 그 한 ‘예’ 로 2017년 3월 육군 17사단, 김포시, 홍철호 의원 등이 합동 실사를 하고 통문을 4개 정도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하였으나, 김포시는 일산대교에서 김포대교까지의 소송 걸린 구간과는 별도로 일산대교에서 용화사까지의 구간은 소송과 별개 구간으로 통문 설치를 추진하였다면 지금쯤 김포의 한강 둔치는 김포시민의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아쉬움이 크다.

박태운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박태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