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리동네⑥ <떨림과 울림>

물리학자 김상욱의 책 <떨림과 울림>(arte, 2018)은 읽으면서 참 어려웠다. 내가 왜 이걸 알아야 하나?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환원과 창발, 위상수학, 맥스웰 방정식 등의 전문 용어들은 생경했다. 과학은 소설이나 시의 다양하고 무궁한 개인적인 해석에 익숙한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학문임에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길 수 있도록 만드는 매력이 분명 있다. 단순한 이론과 용어의 나열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연결되는 그 무엇.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문학의 느낌으로 물리를 이야기해보려고 썼다고 말한 것처럼 그 노력이 느껴지는 지점들에서 가끔 뭉클해진다. 가령 이런 부분들이다.

수많은 입자가 모이면 비로소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새로운 현상들이 창발(創發)한다. 인간 역시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새로운 실체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고민하는 실체다.(p.117)

살다보면 남과 다툴 일이 있다. 여기에는 자기가 옳고 남은 틀리다는 생각이 깔린 경우가 많다. 지구에서 보는 우주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 위에 정지해 있는지도 모른다. 다투기 전, 달에 한번 갔다 오는 것은 어떨까?(p.142)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p.172)

 

또한,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책과 영화들을 인용하며 과학과 자연스레 연결 짓는다.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생명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까뮈의 <전락>으로 중력을 설명한다. 그밖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같은 책들과 <인터스텔라>, <그녀>, <엑스 마키나> 등의 영화들이 과학자의 시선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특히, 보르헤스의 단편 <바빌로니아의 복권>과 ‘우연’을 연결 짓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에는 복권을 파는 회사가 등장한다. 당첨자 중 6등은 벌금을 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복권의 결과는 우연인 것 같지만, ‘실은 완벽하게 조율된 필연적인 우연이었다.’(p.148) 결국 회사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책임을 돌리는 ‘신’과 같은 존재다. 저자는 뉴턴역학을 통해 세상에 ‘우연’이 들어설 자리는 없으며 자유의지가 없다면 죄도 없고 벌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영혼’이라는 새로운 복권을 만들어 뉴턴이 야기한 무법천지에서 세상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종교와 과학의 결론 나지 않는 엎치락뒤치락을 보는 듯하다.

 

오늘도 우리는 복권을 산다. 벌칙에 걸리지 않은 것을 회사에게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산다.(p.151)

 

이외에도 과학에서 출발한 저자의 인문학적 스펙트럼은 꽤 폭넓다. 생물학의 측면에서 남녀차별의 역사를 비판하고, 위상수학의 차원에서 모두 동등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모습을 늘리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을 꼬집으며 인생의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장자의 사상과 중용 등의 동양철학과 양자역학의 유사성을 통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개념을 조화시키는 것이 자연의 본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의 시대의 도덕성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부분이나 과학의 발전을 통해 이룬 부의 분배 문제에 대해 부의 평균을 높이기보다 표준편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결국 물리학이 우주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하고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답한다. 물리는 한마디로 우주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단지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거기에 의도나 목적은 없다고. 생명체는 정교한 분자화학기계에 불과하며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고. 그러나 이어지는 다음 말에서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가치를 발견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p.251)

 

거대한 우주에서 먼지보다 미미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회의하는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분해하고 분해하면 결국 다 똑같은 전자로 이루어진 몸뚱어리지만 그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가치도 의도도 없는 무의미한 시간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게 될 것이다. 무의미의 의미라는 역설, 어떤 시보다 아름다운 함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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