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1724년 4월 22일 독일의 변방 쾨니스베르크(현재의 리투아니아 지역)에서 한 마차 수선공의 아들로 임마누엘 칸트라는 가녀린 사내아이가 출생하였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병약한 아들이 당시 평균수명인 30세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좁은 어깨와 새가슴을 한 아들이 그저 별 탈 없이 제구실하는 정상인으로 자라기만을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어머니는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렇지만 그 바람과는 대조적으로 칸트는 1804년 2월 12까지 무려 80세를 살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 철학사에서 큰 방점을 찍은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왜소한 체구에다가 병약한 체질을 가진 칸트가, 그것도 자기 고향 쾨니스베르크를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지역주의자가 어떻게 지금까지도 세계의 학문 영역에서 가장 많은 철학적 주제를 남긴 위대한 사상가가 되었을까? 

칸트의 삶은 한 마디로 성실 그 자체였다. 그는 시간 사용에 있어서 철저하였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그는 ‘시계보다 더 정확한 습관’을 만들어 유지하고, 자기와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그는 7시에 기상하여 9시에 출근을 하고, 12시에 시작하여 2시간 동안 천천히 식사하고, 오후 3시에는 산책을 하는 것을 고정적으로 실천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이 습관을 만들고 평생에 2번만 어겼는데, 그것도 중요한 사람과의 약속으로 그리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엄청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 개개인은 자율적 존재로 태어났으며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인간의 도덕이 나온다고 칸트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주장한다. “너의 의지의 격율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다는 인정을 받도록 그렇게 행동하라!” 자신이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 문제시되면 으레 남에게 핑계를 대는 오늘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동 수칙이다. 철저한 규칙, 바른 습관은 건강을 일으키는 지름길이다.

칸트는 병약함을 극복하고 당시로서는 천수인 80을 살았는데, 그 비결을 묻자, “내 건강은 습관이 만든 걸작이오.”라고 대답했다. 천천히 걷는 산책과 하루 한 끼의 식사, 같은 시각에 같은 양의 사색과 집필은 그의 건강이 적금 붓듯이 효율적으로 쌓여간 것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사람들은 산책Spaziergang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혹은 지성인들의 사고 활동으로 여긴다. 

칸트의 습관을 통한 절제 생활은 그의 철학사상으로 체계화하였다. 서두르지 않는 성격 때문에 그의 교수직은 50세가 되어서야 주어졌다. 그간에 소논문은 썼지만, 독일 철학자들이 보여주는 저술은 57세가 되어서야 나왔다.

요즘으로 치면 80세나 된 노교수의 초기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이 저술이 전 세계 철학자들을 놀라게 한 <순수이성비판>이다. 한 마디로 우리 이성은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식이란 인간이 만들어 내는데, 지식 제작자인 인간이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예로, 인간의 지식으로 초월적인 하나님은 알 수 없다. 

칸트의 철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수십 년을 걸친 사고의 결과인 이 <순수이성비판>을 12년에 걸쳐 다시 고쳐 출판한다. 더하여 이런 인간의 한계를 계속 연구하여 삼 년 사이에 <실천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을 발간하여 유명한 삼 비판서 시리즈를 완성한다.

<순수이성비판>만 해도 800쪽에 가까운데, 반쪽이나 한쪽 분량의 서술이 한 문장을 이룰 정도로 호흡이 긴 저술에서 칸트가 한 사색의 유장함이 숨이 막히게 느껴진다. 그러나 어느 문장 하나도 뜯어보면 논리적이지 않은 서술이 없다는 사실에서 칸트의 치밀성이 폭포수처럼 다가온다. 이런 이유에서 철학사는 칸트 전후로 갈라진다는 평을 많이들 하고 있다.

칸트는 비록 18, 19세기를 산 독일의 철학자였지만 영향력은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이 저술들은 서양의 유명한 사상의 양대 산맥인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비판·극복하는 과제를 완성한 역작이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의 정신을 받아들여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극단적 이념의 분열을 새롭게 통합하는 정치사상이 나왔으면 좋겠다. 
공교롭게도 칸트가 쓴 글 중에는 <영구평화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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