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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일제잔재도 청산하라
박태운 발행인

엄연히 존재하는 일제잔재들, 일본인들이 편찬한 '조선사'를 그대로 번역하여 '국사대관'으로 바꾸어 배우게 한 국사, 지금도 사실로 증명되어 출토되고 있는 단군역사를 신화로 바꾼 일본인이 쓴 한국역사를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됐다. 국보·보물·사적들의 순위도 이유막론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강단사학자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위원회 만들어 직접 해야만 강단사학자들의 완강한 저항을 막을 수 있다. 문화재관리 위원회부터 대 수술해야 역사개혁의 시작이 된다.

최근 김포시가 김포1동을 김포본동으로, 김포2동을 장기본동으로 동 명칭을 변경하면서 본동이라는 일제잔재 명칭 여부를 놓고 김포시가 김포신문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고발하였다. 결과는 동 명칭을 변경하는데 필수적으로 지명위원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정정 보도를, 본동이 일본식 지명표기에 유래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김포시의 반론을 게재하는 것으로 판결이 났다.

김포본동이나 장기본동에서는 '本'자를 붙여 동명을 만든 것에 만족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本'자가 붙음으로 김포의 근본이요, 대표성을 갖는다는 긍지심의 발로다. 그 여파로 통진 사람들은 통진은 현이었고 김포는 원이었다. 원보다는 현이 더 큰 고을이었고 현감아래 원님이었다. 통진에서는 '本'자가 붙는다면 김포의 대표성으로 통진에 붙어야 한다고 하고, 고촌사람들은 어차피 서울에서부터 시작하는 중앙에 대한 인식으로 볼 때 고촌이 관문이고 고촌에 '本'자가 붙어야 맞다 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本'자가 갖는 일본식 지명유래 논란을 떠나서 김포의 근본이고 시발이라는 측면에서 새삼 접근되는 논리의 확장성을 말한다.

최근 들어 재야사학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각종학술대회에 가보면 참석자들의 열기도 대단하여 발제자와 토론자, 플로어까지 합세하여 난상토론이 벌어지곤 한다. 그들이 분노하고 흥분하는 건 하나다. 어떻게 우리의 삼국시대 이전 고대사가 증명되지 않는 역사로 치부하여 거부되고, 우리민족의 태두인 단군이 신화로 취급되느냐,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노골적으로 고구려의 역사까지도 편입시키고 있는데, 강단사학자라 불리어지는 대학의 교수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일제가 만든 일본어로 된 '조선사35권'을 일본학자 금서룡과 그를 보좌해서 번역한 이병도가 '국사대관'이라 하여 발표한 책을 해방 후 서울대학교에서 강단에 서며 국사대관을 기초로 하여 교과서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단군은 신화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분노다.

재야사학자들은 강단사학자들의 한국사 견해가 일본 우익의 견해와 맞닿아 있다고 여긴다. 심지어는 아직도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못한 일본 극우세력의 지원을 받지 않는가를 의심한다. 대학의 강단을 차지한 사학자들은 학생들의 논문에 대한 심사권이 있고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그들의 주장에 맞는 논문을 써야하고 대학교수로 계속 임용 받아 재직하는 조건에는 연간 3편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든가 3회 이상 학회지에 발표를 해야 하지만 학회를 차지한 강단사학자들이 재야사학을 인정하는 글을 게재해주지 않는다.

재야사학자 송부웅교수는 上代史를 桓國(환국)·倍達國(배달국) 64,747년, 古代史를 고조선 2096년, 북부여202년. 中代史를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남북국, 후삼국으로 분류한다. 상대사와 고대사를 합쳐보면 우리역사는 가히 7만년에 해당한다. 세계 어느 민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기원을 갖고 있지 못하다. 증명되지 않는 허구라는 역사가 중국의 북부지역에서 한반도 역사와 동일한 유물들이 계속 출토되어 발견되고 있다. 중국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자신의 역사로 꾸미려 해도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미 그것이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당사자인 대한민국만 일본인들이 쓴 한국역사를 증명되는 역사라 하여 신봉하고 있는데서 발생한다.

35년 치욕의 역사를 만든 것도 우리요, 지금도 그 치욕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잔재들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는 것도 우리가 제대로 일제 강점기를 강력하게 청산하지 못하고 우리민족의 우월하고 장구한 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쳐 세계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역사 되찾기 운동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새 정부에서 추진해주길 바라는 것은, 노무현정부에서야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것처럼, 문재인정부에서는 우리의 신화로 치부되는 상·고대사를 제대로 정리하고 대한민국역사를 일본인이 쓴 역사에서, 우리가 고증하는 제대로 된 역사로 바로잡는 일을 함으로 민족과 역사 앞에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는 일이다.

피폐하고 고된 인생들에게 '희망'이 있어 오늘을 참아내는 것처럼. 갈가리 찢긴 우리역사와 민족정신을 새롭게 정립함은, 미래 우리후손들에 대한 큰 격려이자 배려라고 생각한다. 하나만 거론해보자. 일제시대 4대총독인 우가키 가즈시게는 우리의 문화재관리체계를 수립하면서 崇禮門(숭례문)을 보물1호, 興仁門(흥인문)을 보물2호로 지정했다. 해방 후 1962년에야 숭례문을 국보1호, 흥인문을 보물1호로 바꾸었다. 국보는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와 제작연대, 기술의 우수성, 특수성이 특출한 것으로 분류하고 보물은 국보 다음으로 가치가 높거나 우수한 것, 국보로 정해진 것과 유사한 것들 총칭 포함함으로 국보보다 6배나 많이 지정돼있다.

일제는 숭례문을 헐어버리려 하다가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아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을 누가먼저 한양을 함락하는가의 공을 따지겠다하여 경쟁적으로 한양입성을 할 때 숭례문을 통해 소서행장이 앞서 진입하고, 흥인문을 통해 가등청정이 입성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듣고 숭례문파괴를 보류하고 남대문으로, 흥인문을 동대문으로 부르게 하였다.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가 그들에겐 자랑스러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괴를 면한 숭례문과 흥인문은 일제의 대우를 받아 보물1, 2호로 지정된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정서는 동, 서, 남, 북의 순위를 존중한다. 남쪽의 숭례문보다 동쪽의 흥인문을 더 우선한다는 의미다. 조선은 유교를 존중했고 기본적사상은 仁·義·禮·智(인·의·예·지)다. 이순서 또한 동·서·남·북과 괘를 같이 한다. 4端(단)중, 仁은 어진마음이 북돋아 우러나오는 인간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정신을 담고 있다. 숭례문이 아닌 흥인문이 국보1호가 돼야하는 이유다.

지금도 국민들은 일제시대에 정한 국보1호, 보물1호를 비롯해서 사적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이유 말고 새롭게 국민이 납득할 만한 기준으로 국보, 보물, 사적을 정리해주길 바란다. 국민들은 훈민정음이 왜 국보1호가 아닌가를 의아해한다. 지금은 해방 후 국보를 재지정한 1960년대가 아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보다 더 높은 세계최고의 교육수준을 득한 구성원이다. 우리현대역사에 있어서는 진보와 보수가 갈리지만 근세 이전의 역사는 보수와 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제잔재와 우리정통역사로 갈릴 뿐이다. 우리정통역사 정립을 문재인새정부에서 다뤄주길 기대한다.

박태운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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