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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대한민국 生存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生存이 절실하다

우리의 역사는 증명한다. 근대사에서 각종 국제회담을 통해 대한민국의 한 가닥 의견도 없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맘대로 농단되어 왔음을 기억한다. 이제 거대 중국이 될수록 사드문제가 입증하듯 대한민국의 입지는 미·중 양국의 국익대로 놀아날 것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생존” 할 것인가? 와신상담( 臥薪嘗膽)의 인내심을 갖고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외세에 우리의 안보주권을 유린당하지 않도록 핵무장 등 자주 국방력을 확보해야 영구한 대한민국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은 늦지 않은 골든타임이다.

박태운 발행인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 때문에 세상은 존재성을 확립한다. 우주가 아무리 신비롭고 광활해도 생물체 없이 행성과 우주공간만이 존재한다면 존재자체의 이유도 없어진다. 하물며 오감을 통하여 인지하고 생각을 포용하여 우주를 존재케 하는 인간이 있음으로 비로소 우주는 생성의 가치를 향유하게 된다. 인간이야말로 현재의 인식기준으론 절대적 명명자다. 인간이 별이라 부르는 우주의 수많은 항성과 행성도 인간이 있기에 비로소 그 가치가 증명되어지고, 조금 더 엄밀하고 세밀하게는 “나”라는 인식 자가 있음으로 우주만물과 사람들 세계가 있다고 하겠다. 내가 없는 이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 숨 쉬고 느끼고 감응할 때 세상은 나와 함께 공존함으로 그 가치와 기준은 절대적 능력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엄중하다. 내가 있으면 세상은 존재하고,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살아 숨 쉬는 존재” 바로 “나”라 부른다. 언젠가 태어났고 지금 어느 상황과 상태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태어난 저마다의 인간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피땀 어린 노고와 싸우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끈임 없는 “죽지 않는 기적 만들기”에 열중한다. 내가 숨 쉬고 있어야 세상이 존재하니 나는 기필코 죽을 수 없다. 아니 나만은 살아야 한다. 이게 인간의 본연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기이하게도 서로 죽고자 분열한다.

갈등공화국 대한민국이 기어이 생존의 기로에 섰다. 햄릿의 절규처럼 “죽느냐 사느냐”를 연호해야하는 시점이다. 평온한 세상에서 웬 엉뚱한 소리냐는 말도 있을 법하다. 턱없는 선동적 말처럼 들려도 지금쯤은 누군가가 이런 말들을 쏟아내 줘야 한다. 그래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기에.
몇 줄의 소설이라도 써야겠다.

100년전 혼란의 시대현상과 지금이 너무도 비슷하게 닮아 있다고 세평가들은 말한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 당시와 크게 다른 게 하나 더 있다. 당시의 외세는 서구열강과 일본의 득세시절로 대륙의 끝단인 한반도는 대륙은 오히려 열려진 통로였다면, 지금은 겉으로는 미국과 일본의 해양통로가 열려진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물론, 열려진 통로란 대한민국의 살길을 말한다. 또 하나, 중국과 러시아 외에도 특별한 변수 “북한”이 있다는 사실이다. 더하여 화룡점정은 수구와 진보가 합세하여 마치 누가 더 국가와 민족과 사회의 정의인지를 광장에서 싸우다 부모와 자식세대를 골 깊게 갈라놨다는 것이다. 막무가내의 부모를 자식이 공경하지 않고, 부모 말을 천대시하는 자식은 남보다도 못하다고 서로 갈라섰다.

술좌석의 설왕설래에서 이제부터는 자식에게 한 푼도 안주겠다는 말이 횡횡하고, 어차피 노년을 자식 찾지 말고 외롭게 지내시라 한다. 양측모두가 어금니물고 그렇게 하겠단다. 왜 그렇게 됐나, 누구들 때문에? 정치인들 때문에? 확실한 것은 국민을 두 동강낸 것은 정치인들이라는 점에서는 맞다. 변명의 여지도 모두 없다. 왜냐하면 분열의 주인공들이 저마다 국민을 사랑으로, 위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지금도 옳고 그름과 정의와 명분으로 자기들만의 정치를 구가하기 때문이다. 위로 받고 치유 받아야할 국민들은 의사와 처방이 급하다.

주변판세로 돌아가 보자. 10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6.25전쟁 전에는 존재했던 북한의 변수다. 남한보다는 무력이 강했지만 독자적 판단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당시 소련과 중국의 승인과 사주로 일으킨 전쟁이었다면, 지금은 20개 이상의 핵을 보유하고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김정남을 살해한 독가스 등 세계3위의 화학 살상가스와 독극물, 치명적 세균전에도 대단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원자탄, 수소탄이 아니라도 미사일에 살상가스와 전염력이 큰 세균을 실어 서울을 비롯한 부산, 제주까지도 일본은 물론 미국도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가공할 위력적 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지금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여념이 없다. 며칠 전 한국을 방문하고 중국을 방문한 미 국무장관 틸러슨은 일본은 확실한 동맹국이고, 한국은 중요파트너국가로 분리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언제든 한국은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트럼프는 김정은을 “매우매우 나쁜 지도자”라 강조하여 칭하였다. “이제는 북한타격을 실행할 때”라고도 호언한다. 예측키 어려운 트럼프 성격상 어떤 대북한 판단이 행해질지 아무도 모른다. 단 하나 확실한건 북한이 미국의 국익에 반하고, 북한 선제타격이 미국 국익에 크게 이롭다면 북한 선제공격도 가능할 것이고, 한반도는 남북한 전 지역이 잿더미가 될 것이다. 남북한과 미국의 무력은 세계전사에서도 유래 없는 인명과 국토가 초토화가 될 만큼 강력하다. 미국이 한반도 방위를 포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 없이 주변강국에 의한 또다시 놀음판에선 한국, 대한민국이 살아야 5천만명의 생명이 생존한다. 생존하는 전략은 최적이고 다양해야한다. 국가는 “생존”하지 않으면 존립의 의미가 없다. 인간도 “생존”하지 않으면 삶의 종말이다. 살다말고 죽기위해 태어난 우리가 아니지 않나, 남북한이 공멸하지 않고 함께 공존 공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국제외교에서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모르는 줄타기 재주는 이제 접어야 한다. 사드문제로 비열함을 보이는 중국이나 국익우선의 미국을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항상 주장하거니와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살길은 “핵무장”뿐이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건너야 살 수 있다. 세계에 우리의 “생존의 몸부림”을 알려주고 보여주어 우리는 설득외교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드정도에도 무식하게 나오는 중국은 남한의 핵에는 단교도 불사할지 모른다. 미국은 자국의 세계패권에 도전으로 보고 각종제재를 가할 것이다. 그래도 국토가 잿더미로 변하면서 7천만이 함께 죽는 것 보다는 낫다. 고통을 영광으로 일군 2000년간이나 국가를 잃은 체 세계의 구박덩이로 살다 정신 차린 이스라엘을 본받자.

인간은 생존하기위해 세상에 태어났고 당연히 행복하게 살 천부의 권리를 가진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준비하지 않는 국가는 미래도 없고 전쟁억지 수단은 대등한 전쟁능력을 갖는 길뿐이다. 국론을 모으지 못하고 비극적 지역우선주의가 계속 판친다면 우리는 기필코 죽을 것이다.

박태운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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