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왕룡 칼럼]누리과정 예산갈등 진단과 해법모색

'영유아 보육법'에 보육경비 부담 주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명시되어 있다. 교육재정 부채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에서 누리과정 전체 예산이 국가재정 차원에서 확보되지 않는다면 초중등 교육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 전액 국가재정 편성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내국세 비율 확대 등 제도적 해결책 마련해야 한다.

누리과정 예산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영유아 자녀를 키우지 않는 일반시민에게는 누리과정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것이다. 누리과정은 가구 소득과 관계없이 만 3~5세 자녀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면 누구나 정부의 보육·교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다. 참여정부 시기에는 소득하위 70%까지 지원됐던 것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3월 만 5세 어린이에 대해서는 전 계층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에 따라 2013년 3월부터는 만 3~4세까지도 전 계층에 지원되는 것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이 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예산부담을 누가 해야 하는가를 두고 매년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현행법상 보육예산은 정부나 지자체가 부담해야

누리과정 논란의 출발은 201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내걸면서 영유아 보육․교육에 대한 국가 완전 책임 실현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책실현의 핵심인 재원조달 방안이나 법적 근거마련이 부실했다. 누리예산의 법적 근거로는 국회에서 제정된 영유아 보육법과 이를 근거로 제정된 정부의 시행령이다. 당연히 영유아 보육법이 시행령 위에 있다.  '영유아 보육법' 4조에는 보육경비 부담 주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명시되어 있다. 누리교육, 그중에서도 보육은 국가와 지자체가 경비를 부담해야 된다는 것으로 교육청에 떠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법'에도 ‘교육기관에만 보통교부금을 지원하도록 규정’돼 있다. 현행법상 어린이집은 보육기관이지 교육기관이 아니다. 당연히 보육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사업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결국 시도교육청에서 예산을 부담하는 게 아니라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의 논리는 이와 다르다. 누리과정의 재원은 지방재정 교부금이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근거가 누리교육과 관련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영유아 무상보육 실시에 드는 비용은 예산의 범위에서 부담하되,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법'에 따른 보통교부금으로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청와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를 근거로 누리과정의 재원은 교부금이라며 교육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은 시행령의 상위법이다. 그런데 시행령이 상위법과 배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이 시행령을 근거로 내세우며 교육청을 압박하고 있지만 논리가 궁색해 보인다. 

예산도 준비 안 된 채 무상 보육 실시 서둘러

이렇듯 불안정한 법체계 속에서 누리예산을 둘러싸고 논란이 본격화 된 건 2014년 9월부터다. 정부가 2015년 예산안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이 도화선이 되었다. 정부 예산안에 시도교육청이 요구하던 누리과정 예산이 제대로 반영이 안 된 것이다. 이에 전국의 시도 교육감들은 2014년 10월 7일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정부가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보육은 현행법상 교육 영역이 아니니 유치원 부분만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시도교육청 예산에서 누리과정을 편성하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정부가 예산을 배정해 주지 않으니 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안그래도 지금 교육청들은 예산 부족으로 지방채를 발행해서 그 예산을 충당하고 있다. 어린이집만이 아니라 유치원도 무상으로 지원하기가 어려운 재정 형편인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야권의 무상급식에 대응해서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 그 결과 예산 준비도 안 된 채 서둘러 무상 누리과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육 대란을 불러 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누리과정 전체 예산이 국가재정 차원에서 확보되지 않는다면  초중등 교육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도의회 교육위 ‘유치원과 어린이집 예산 전액 삭감’

지난달 경기도교육청은 내년도 예산안을 도의회에 제출하면서 누리과정 소요액 1조559억원 가운데 유치원분 5천100억원만 반영하고 어린이집 5천459억원은 편성하지 않았다. 예산안을 넘겨받은 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누리과정은 정부 책임인 만큼 교육청이 부담할 이유가 없다"며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마저 전액 삭감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겼다. 어린이집, 유치원 할 것 없이 누리과정 전체는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의견인 것이다. 경기교육청은 어린이집 및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충당을 위해 지방채를 계속 발행하는 과정에서 부채 비율이 40%를 초과하여 재정 위기 단체로 지정될 위기에 처해 있다. 재정 위기 단체가 되면 자율적 예산 편성을 못하고 교육부 감독을 받아야 한다.  다른 교육청도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1~2년 내에 경기도와 같이 극도의 교육 재정 부족 사태를 겪을 것이다. 교육 지방자치제의 근간이 흔들릴 위기상황이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책임있는 해법 내놓아야

여기에서 누리과정 예산의 성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리과정 예산은 앞서 말했듯이 지방재정 교부금으로 운영되어 왔다.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을 설치하고 경영하는 데 필요한 재원이 바로 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각 교육청에서는 이 예산은 교육용도 예산이니 온전히 교육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논리다. 안그래도 학교 신설 등으로 각종 BTL 사업을 하면서 교육재정 부채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교육재원의 근간인 지방교육 재정교부금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2014년 정부가 책정한 전국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39조5206억원이었다. 2013년보다 1조3475억 원이 줄어들었다. 이 돈으로 누리교육뿐만 아니라 전국의 시도교육청이 나눠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비용을 감당해 왔다. 교육청 입장에서 보면 누리교육에 들어가야 할 돈이 많아졌으니 전체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도 늘어나야 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오히려 줄어들었다. 교육재정 교부금이 줄어들게 된 데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과 정부의 세수추계 잘못이 크다.  ‘내국세 총액의 20.27%’로 정해져 있는 교육재정 교부금은 세금이 많이 걷히면 교부금도 많아지고 세금이 적게 걷히면 줄어들게 되는 연동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데 경기악화로 내국세가 줄어들면서 직격탄을 맡게 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무상급식이나 혁신학교 운용 등에 과도하게 교육예산이 투입된 것이 교육재정의 악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홍준표 경남지사의 주장에서도 보듯이 무상급식이 법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며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경향이다. 이미 여러번 선거를 통해 대표적 복지정책으로 국민 속에 뿌리내린 게 무상급식이다. 각급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있음에도 관련법 부재를 거론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부정하는 행위다.

또다시 지방채 발행이나 환경 개선비 명목으로 3천억 지원 등의 우회적 방법은 항생제 처방밖에 안된다.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누리과정 예산 전액 국가재정 편성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내국세 비율 확대 등 제도적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이라도 대선공약 이행에 대한 책임있는 응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왕룡 김포시의회 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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