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봉사대장' 권영선 회장

40여년 봉사 및 사회활동 펼쳐
지금도 차상위가정에 쌀 배달
양말장사하며 새마을회관 신축


어릴 적 밥 대신 술지게미를 먹었다. 그나마도 날마다 먹지 못할 때가 많아 굶는 날이 허다했다. 초등학교 시절 추운 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못해 추위 속에 떨며 학교를 다니다 놀림을 받던 기억들이 아프다. 아픈 기억들, 이런 사실이 부끄럽지만 꾹꾹 눌러가며 못 다한 학습을 독학으로 극복한 사람의 삶. 그런 삶을 가진 인생은 어떠했을까


권영선 회장. 권 회장은 고향 양촌읍 석모리에서 출생해 지금까지 그곳에서 72년을 살아왔다. 어렵고 슬픈 삶의 여정을 겪어 오며 40여년을 봉사로 살아온 '봉사대장 권영선' 회장의 삶은 어려움을 봉사의 원동력으로 삼아왔다.

장기동에 위치했던 전 김포시새마을회 회관을 신축한 장본인으로 (사)김포시새마을회 초대회장을 지낸 권영선 회장은 지금도 양촌읍 새마을동우회장과 방우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권 회장의 삶은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활동으로 시작됐다. 권 회장은 "봉사는 마음의 약이요, 건강의 약이라 늘 생각해 왔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서 봉사활동을 해온 게 아닙니다"며 지난 40여년의 삶을 회상했다.

권 회장의 봉사활동은 군대 제대 후 지역 소대장을 맡아 활동을 시작한 지난 1970년도부터 시작됐다. 지역 일을 시작하면서 그의 능력을 인정해 준 마을에서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붕개량운동을 비롯해 포장공사, 올림픽추진위원 시절에는 김포시에 1500여개의 꽃박스 등을 설치하였다. 지금처럼 현대화된 재배환경이 갖추어지지 못한 당시로서는 이런 활동은 눈물겹도록 노력과 열정, 여러 단체 회원들의 협력을 끌어내지 않고서는 어려운 작업이다.

1990년을 전후해서는 300여명의 무의탁 노인들을 양곡중고등학교 강당에 초청해 7번이나 잔치를 벌였다. 1992도부터 2년 동안 김포시청에서 500여명의 무의탁 어르신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김포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1983년부터 12년 동안 양촌방위협의회 총무 겸 부의장을 맡아 활동하던 활동하던 때는 당시 지역사회에 많은 일을 한 기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양촌읍은 시골로서 농사가 주를 이뤘고 일손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었습니다. 일손을 수급할 수 있는 길은 학생들과 군인들뿐이었습니다. 주변 군인들의 대민지원으로 일손 돕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원만한 관계를 위해 권 회장은 주변의 부대들과 자율방범대, 예비군연대 등에 명절 때를 비롯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의 후광이 남아서 마을마다 새마을회는 지역봉사단을 대표하는 단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권 회장은 새마을회 회장 역임시절 전국 최초로 새마을회관을 짓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1995년 1월 양말장사 등을 하면서 기금을 마련해 장기동 48번 국도변에 회관을 착공했고 2년 뒤 준공을 마쳤다. 수많은 좌절과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였다. 이 회관은 신도시에 편입돼 보상을 받았고 현재의 회관을 신축하는 물적 토대가 됐다.

권영선 회장은 "양말장사를 시작했고 회원들이 하나로 단합하여 눈물겹도록 힘든 과정이 많았지만 결국 단합된 힘으로 회관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권 회장은 사단법인 김포시새마을회 등기대표가 됐다.

눈이 안 좋아 앞이 침침한 가운데서도 권 회장의 봉사 열정은 아직도 넘친다. 지난 설 명절 당시에도 양촌읍 내 차상위 계층의 가정을 찾아서 쌀을 전달하는 일을 손수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부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실제로 어려운 차상위 가운데서 독거노인들 가정을 찾는다.

특히 소년소녀 가장들의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권 회장은 어릴 적 어려웠던 자신의 처지가 생각나 눈물로 그들을 위로할 때가 많다. 그리고 더 나누지 못한 안타까움까지 더해 눈물이 아직도 많다는 게 주변 지인들의 평가다.

"죽을 때까지 봉사하면서 지역과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면서 여생을 마칠 것입니다"라는 권영선 회장의 뒤에서 부인 한상자 여사의 뼈 있는 한마디가 넘어왔다. "저는 구멍가게하며 자식을 키우기 바빠도 저분은 돈 벌면 퍼다 주기 바빴어요. 그래도 한결같으니 뭐라 하겠어요. 그렇게 생기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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