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김포우체국 안동원 집배실장


우편물 2천통과 소포 50개
사명과 성실이 체화된 신앙

2014년. 곳곳에 빽빽한 아파트 숲들이 자리한 김포. 신도시도, 장기지구나 사우지구도 없었던 시절 사람들의 풍경은 어땠을까? 25년간 월곶부터 고촌까지 김포를 두루두루 돌면서 집배일을 맡아온 안동원 집배실장을 만났다.

"곧 설날인데 그때는 명절이면 마을마다 돼지를 잡았어요. 편지 한 통 전하려 들르면 모두들 밥 먹고 가라고 난리였지요.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꼭 그랬습니다. 정이 많은 때였죠. 또 누런 양횟종이에 싸인 훈련소 소포를 전달할 때면 전해 받은 사람이 엄마인지 아닌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엄마는 주소에 쓰인 이름만 보고도 바로 눈물을 흘리지요."

꼬맹이들에 대한 추억도 많다. "예전에는 모두가 손편지를 썼죠. 특히 초등학생들은 삐뚤빼뚤 글씨로 친구들의 별명을 적어 편지를 보내곤 했어요. 주소도 정확치 않고. 그래도 그 마음, 아이들 마음씀을 생각해 반송하지 않았죠. 그럴때면 마을 여기저기를 찾아 물어서라도 꼭 전달해주곤 했죠. 덕분에 마을 아이들 별명도 알게 되고요.(웃음)"

집배원들은 오전 7시에 출근해 8시면 편지를 싣고 현장으로 나간다. 이들은 하루 평균 1,800통의 우편물과 170통의 등기, 50개의 소포를 배달한다. 그렇게 돌고돌아 오후 5시면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업무종료? 아니다. 다시 밤 9시까지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코스대로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집에 들어가면 밤 10시. 다시 새벽이면 일어나 일터로 향한다. 금요일에 고객이 접수한 택배를 배달하기 위해 토요일에도 출근한다. 편지 한 통에 대한 사명과 성실함이 체화된 신앙이다.

한 동이 예전 두서너 마을을 모아놓은 세대수에 육박하는 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선 뒤 배송물들은 기하급수로 늘었다. "2000년대부턴가 인터넷쇼핑이 시작되면서 택배가 늘기 시작했죠. 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택배나 홍보우편물이 급증했습니다. 손편지는 만나기 힘들고 요즘은 카드, 휴대폰 명세서에 각종 세금 고지서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거죠."

집배원으로 근무하며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1995년 첫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내는 선거공보 외에도 후보자들이 별도로 홍보물을 보낼 수 있었어요. 처음하는 선거라 후보자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밤 늦게까지 한 사람의 홍보물 다 돌리고 돌아와서 또 다른 사람의 홍보물이 와 있는 걸 볼때는 정말 힘들었죠. 며칠 동안을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집배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일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함께 눈을 맞추며 우편물을 나르던 동료의 사고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15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졌어요.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아직 잘 살아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때가 제일 힘들어요."

예전 일주일이면 지나갔던 명절 물류전쟁. 점점 택배로 배달되는 사람들의 정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보름을 꼬박 매달려 배송해야 한다. 설날을 앞둔 우체국은 오는 21일부터 물류전쟁이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우리 집배원들도 농사로 치면 천수답 농사를 짓는 겁니다. 비 오고 눈 오면 정말 힘들죠. 농부는 적당한 때 내리는 눈이 감사하겠지만 저희는 안 내렸으면 하죠. 그러니 농부나 우리나 모두 하루하루 하늘 바라기 천수답 농사를 짓는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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