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오롯 그 자체가 되고 싶다 / 극단 '여우와 방앗간' 이민수 단장


창단 21년을 맞은 극단 ‘여우와 방앗간’ 이민수(45) 단장을 인천 불로동 고기집에서 만났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내며 익어가는 돼지고기를 보며 던진, 왜 연극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술먹기 위해서"라며 껄껄 웃는다. 껄껄 웃는 우렁찬 목소리와 청바지 차림에서 그의 소탈함과 덩치 좋은 생김새, 그리고 얼마나 술을 사랑하는지가 연상됐다.

이 단장이 연극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이라고 한다. "나는 당시 그 유명한 교회오빠였다. 교회에서 문학의 밤을 기획연출하고 연기지도를 했던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대학에 떨어지고 연극이 좋아서 달랑 버스비만 들고 무작정 대학로로 가서 오디션을 보았다.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불렀고, 지금은 희미하지만 극단에서 주는 즉흥연기를 해 합격했지만, 입단비 2만원이 없어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군대를 갔다 온 뒤 92년에 다시 한 번 대학로 문을 두드리지만 역시 높은 벽을 실감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봇대에 붙어있던 당시 문화원 김기송 원장이 창설한 김포연극단 단원 모집공고를 보고 '방앗간' 창단멤버로 들어간다.

순수 시민 20~30명인 모인 극단이라 상황은 매우 열악했고 보수도 전혀 없었다.

이 단장은 연극이 좋다는 이유로 험한 일도 가리지 않고 했다고 한다 연극은 좋았지만 당장 버스비조차 없었던 이 단장은 직업소개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6개월에 5백만원의 임금과 성과급을 준다는 유혹에 새우잡이 어선을 탔지만 지금과는 달리 그물을 사람의 힘으로만 당겨야 했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 만에 도망쳐 나온다.

이후로도 꽃게잡이 어선을 타는 등 농한기 때는 배를 타고, 농번기 때는 농사를 지으며 돈을 마련했다. 또 목수를 따라 다니며 강원도 양양에 있는 군부대의 대규모 벙커를 짓는 곳에 목수 보조로 3개월 동안 있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먹고 살기 위해 연극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밖에 없어 현재 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농지개량조합에 임시직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 2년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다.

조합에 근무하면서 만들었던 유지관리백서가 지금도 쓰일 만큼 그는 회사 일에 대해서도 프로패셔널했다. 그렇게 정규직이 되고나니 극단에 계속 나갈 수도 있고 눈치 보지 않고 작품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그래서 1년에 4작품을 공연할 정도로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1년에 4작품을 공연한 것은 살인적"이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결혼은 어떻게 했냐고 묻자 그는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아내는 통진중고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재원이었다. 졸업 후 농협에 근무하고 있던 아내에게 첫눈에 반한 나는 아내의 생일을 알아내 꽃다발을 선물한 끝에 마송에 유일한 레스토랑이었던 '르네상스'에서 첫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11개월 연애 중 10번 헤어지고 11번째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며 회상했다.

이 단장은 현실의 벽에 어쩔 수 없이 투잡을 선택했지만 이런 이중생활이 17년 동안 지속되면서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과 건조함, 그리고 연극에 대한 갈증이 심해져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17년의 직장생활로 받은 퇴직금을 없앨 각오와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접어두고 퇴직을 강행한다. 그렇게 극단에만 전념한 것이 벌써 5년이다.

이 단장이 극단에 전념하기 시작하면서 김포최초의 창작물인 '뱃사공 선돌'과 '중봉문화제'라는 큰 축제를 맡아 진행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극단에만 전념하기 시작한지 5년 만에 이루어진 일로 "만약 내가 직장에 매여 있었다면 쉽지는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배우의 삶이 아닌 연출을 하는가 묻자 "연기를 5년 동안 해보고, 나는 연기는 아니라고 깨달았다. 내가 만약 계속해서 연기를 했다면 극단을 그만두고 떠났을 수도 있지만 연출을 하게 됨으로써 극단을 오래 끌고 오는 계기가 된 듯하다"고 말했다.

연극에 대한 철학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삶을 살아도 죽음을 인지 못하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연극을 통해서 삶의 중요함을 알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단장은 극단 말고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질문에 “연출뿐 아니라 김포지역의 문화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 그래서 기획력을 발휘해 김포에 문화예술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낮에는 문화예술 전파를, 저녁에는 공연을 위해 일하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란다.

이 단장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며, 행운아라고 생각 한다. 나는 연극하는 사람으로 그려졌으면 좋겠다. 연극을 하면서 자유롭고 싶다"며 연극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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