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 집배원들의 삶과 애환

권연택 집배기장
김포우체국 권연택 집배기장(58)은 김포 최고참 집배원이다.

27살 늦은 나이에 우편배달 업무에 몸을 담았던 그는 “입사 당시 3명이던 집배원이 1년만에 오토바이가 보급되면서 2명이 하성전역의 우편물을 담당해야 했다.(지금 하성은 7~8명이 구역을 나눠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우편물이 많진 않았지만 활동반경은 어마어마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가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배달한 우편물은 어림잡아도 8백만 개가 넘는다. 10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5급 집배기장이 됐지만 특별대우는 없다. 노동집약적 업무라 후배들과 같은 거리를 움직이고 같은 양의 우편물을 배달한다.

권 집배기장 다음 가는 고참인 정문석 집배실장(54)은 87년 통진우체국 입사해 올해로 24년차다. 정 집배실장도 옛날 얘기를 꺼내자면 할 말이 많다. 특히 자식들 생각만 하면 한이 맺힌다. “아버지로서는 빵점이었다. 유치원 재롱잔치부터, 학교졸업식까지 아이들 행사에는 무조건 못 갔다”고 그 시절의 어려움을 말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집배원 인기가 올라가 요즘은 고학력 집배원도 많아 졌지만 옛날에는 낮은 학력에 한자나 좀 아는 사람이 하던 직업이었다. 그래서 우체부하면 불쌍하고 우습게 생각하는 직업이었다”고 정 집배실장은 설명했다.

정문석 집배실장
우편물 변화 추이를 보면 옛날에는 우편물이 많아야 한 사람당 하루 4~500통, 등기우편도 기껏 열 댓 통이었지만 지금은 명절이 아니더라도 한창 폭주할 때는 2~3천통에 이른다고 한다.

또, 일반 편지는 군인들 외에는 거의 없다. 정감어린 내용의 글은 사라지고 딱딱한 공문서 아니면 상품이 우편물의 주를 이룬다. 내용물 자체가 바뀐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배원들에게 가장 애로사항은 견배와 사고다. 견배란 사고 등으로 빠진 사람의 배달 몫을 나머지 사람들이 나눠 맡는 것인데 동료가 큰 사고로 오랜 기간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기간 동안 엄청난 부하를 감당하게 된다. 다행히 권·정 두 집배장들은 큰 사고 없이 지금까지 왔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우편물이 많은 것 보다 고객과의 관계다. 가벼운 말실수도 민원으로 이어진다. 등기우편물 때문에 매일 약속을 하고 다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배달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 조금이 이해도 없이 당장 가져다 달라는 억지를 부리는 고객도 많다고 한다.

정 집배실장은 “20~30대 주부분들은 조금이라도 맘에 안 들면 바로 인터넷콜센터에 불만 게시물을 올려버린다. 어떤 주부들은 아이가 깬다고 문도 못 두드리게 한다”고 말했다.

권 집배기장이 10년차까지만 해도 우편물이 잘못 들어가면 잘못 받은 사람이 우편물에 적힌 주소로 직접 갖다 주는 게 다반사였다. 권 집배기장은 “나중에 집배원에게 내가 갖다 줬다며 언지를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고도 생색도 안 냈다”며 그 시절 정이 그립다고 말했다.

정 집배실장은 “그 시절에는 ‘우체부’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우편물을 건네주면 밥먹고 가라, 술 한잔하고 가라며 반가워 했다. 그런데 요즘은 우편물이 고지서 위주다 보니 모두 싫어한다. 심지어 오지 말라는 분도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권 집배기장은 “어려웠던 시절 힘든 일과 속에서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일에 보람으로 버텨온 30여년 세월이지만 그 속에서 얻은 성취감과 교훈 때문에 후회는 없다”며 “이 나이에 새삼 느끼는 것은 하고자 노력하다 보면 결국 이뤄진다는 진리”라고 말하는 얼굴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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