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대마도까지8.15해방이 되자 한민족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넘치는 기쁨으로 몸이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은 환희에 빠져 있었다. 특히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어서 조국으로 들어가 국권을 되찾아 새로운 정부를 꾸미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그러나 아무 누구도 우리의 영토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지를 연구해온 지도자는 없었다.미·영·중이 함께 발표한 카이로 선언에서도 또 그 뒤에 있었던 포츠담선언에서도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한다고 천명하였으나 독립된 국가의 영토문제는 그들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몫
대추 한 알의 비밀우리나라 역사에서 독립이라는 말이 처음 쓰여 지기는 최초의 헌법이라고도 할 “홍범(洪範)14조"에서였지 않았나 싶다. 1895년 김홍집 내각이 제2차 내정개혁의 추진을 서약하는 독립서고문(獨立誓告文)을 발표하면서 부터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청나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천명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청나라로부터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철저한 일본의 계략도 배후에는 없지 않았다. 그 뒤 독립이란 말은 개화파의 거두로 미국 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서재필로 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그는 1896년 4월
누가 그들의 애국심을 보았는가 실개천처럼 고불고불 늘어져 있으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만(灣)으로 인해 들어갔다가는 다시 나오고 또 다시 들어갔다 나올 수밖에 없는 지구상의 가장 험한 뱃길 해협. 그것은 마젤란 해협이다.그 마젤란에 의해 발견된 칠레! 바로 그 칠레의 황량한 들판 광산에서 사고가 났다. 광부 33명이 매몰되었다. 그들 광부들의 생사를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살이 돌아온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70여일 만에 살아 돌아오는 장면을 보았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너무나 감격적이었다. 드라마도 그런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