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들의 애국심을 보았는가

 

실개천처럼 고불고불 늘어져 있으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만(灣)으로 인해 들어갔다가는 다시 나오고 또 다시 들어갔다 나올 수밖에 없는 지구상의 가장 험한 뱃길 해협. 그것은 마젤란 해협이다.

그 마젤란에 의해 발견된 칠레! 바로 그 칠레의 황량한 들판 광산에서 사고가 났다. 광부 33명이 매몰되었다. 그들 광부들의 생사를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살이 돌아온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70여일 만에 살아 돌아오는 장면을 보았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너무나 감격적이었다. 드라마도 그런 드라마가 없다.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33명 전원이 살아 돌아왔다. 기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기적이 아니었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애쓴 모든 사람들의 단합된 힘이었다. 지하갱도에 갇혀 있던 광부들의 끈질긴 삶에의 집념과 목숨을 걸고 끝까지 희망의 손길을 뻗었던 구조대원들의 사명의식이 기적을 만들어 냈다.

전 세계의 선량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에서 보여준 칠레 국민들의 성원과 가족들의 기도도 기적을 만들어 내는 데에 한 몫을 했다. 어쩌면 전 인류의 승리일 수도 있다. 첨단과학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서도우리는 특히 한 이름 없는 광부의 이름을 접한다. 루이스 우르수아(54)라고 불리우는 작업조장에 관한 얘기다. 언론을 통해 보여준 그의 치밀하고도 담대한 리더십은 이 시대의 영웅을 보는 것 같은 흐뭇함과 경애의 심정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지하 700미터의 어두운 갱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절망감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살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기도 사치스러운 죽음의 갱도 안에서 그는 뜨거운 열정으로 광부들을 무조건 한 품안에 안았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하면서 말이다. 48시간마다 과자 반조각, 참치통조림 두 숟가락, 우유 반 컵으로 버텨보자고 했을 때에도 아무도 이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그는 다른 광부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를 짐짓 모른 척 하면서 33명의 광부들을 70여일 동안 조용하게 이끌어 온 그의 리더십은 가히 세기적(世紀的)이고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의 영웅의 표상이라 할 것이다. 과거의 영웅은 정복자에게 붙여졌다. 그러나 현대의 영웅은 분명히 온전히 자신을 버리면서 남의 생명을 살려낸 사람들에게 바쳐져야 할 이름이요 영예요 훈장이어야 한다.

우르수아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우르수아는 처음부터 모든 다른 광부들이 구조되고 난 다음 맨 나중에 구조되겠다고 자청을 하였다. 이 생각은 영웅에 더하여 의인(義人)의 태도이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광부들을 이끌어 왔으니 내가 맨 처음으로 나가겠다고 해도 아무 누구도 서운해 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침몰하는 배의 마지막 선장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마지막 구조대상이 되겠다고 자청한 것이다.

모두가 구조되고 난 다음 혼자 남아 있을 갱도를 생각해 보자. 모두가 떠나간 자리는 어느 경우에나 황량하기 마련이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도 객석도 비어 있는 극장에 홀로 앉아 있을 때의 외로움을 이 경우와 비교하면 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모든 이로부터 버려진 것같은 외로움과 갱도가 또 다시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과 다른 이들은 모두 구조되고 자기만 불행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심으로 일초의 고독이 영겁으로도 뻗칠 수 있는 상황을 그는 자초 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 의인이 아니고 누가 의인이란 말인가?

필자는 우르수아라는 한 사람을 통해 이 시대의 영웅과 의인은 동시적 존재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게 된다. 천안함 폭침 당시 죽음을 무릅쓰고 동료 군인의 시신 하나라도 더 찾아 보겠다고 잠수하다가 죽은 한주호 준위도 이제 와 생각하면 이 시대의 영웅이요 의인임이 분명하였다. 영웅과 의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웅이 의인이요 의인이 곧 영웅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필자를 더욱 감격하게 만든 것은 칠레사람들이 보여준 애국심이었다. 사고 현장에는 광부와 구조대원들이 모두 살아 돌아 나올 때까지 넘쳐 흐르는 국기와 울려 퍼지는 국가로 우리의 월드컵 응원단의 열광적인 도가니를 방불케 하였다. 칠레의 국기는 빨간색과 하얀색의 바탕 위에 반짝이는 흰색 별 하나를 가슴에 품고 있는 파란 하늘이 그려져 있는 모양이다.

빨간색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를, 파란색은 늘 푸른 하늘과 칠레국민의 높은 이상을, 흰색은 안데스산맥의 눈을, 흰색 별은 나라의 발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는 국기다.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은 바로 이 국기를 지하에 갇혀 있는 광부들의 숫자에 맞춰 33개를 광산 앞에 꽂아 놓고 있었다.

국기문양을 한 33개의 풍선도 준비해 놓고 있었다.가족들이 구조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였다. 구조에 쓰였던 캡슐에도 어김없이 국기가 그려졌음은 물론이다.그리고 구조되는 광부마다 구조캡슐에서 나오자마자 외치는 첫마디는 언제나 “칠레 만세! 칠레 만세!”였다. 구조대원들이 모든 임무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외친 소리도“임무완수! 칠레”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칠칠칠 레레레”를 외치고 국가(國歌)를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의 국가를 불러 보거나 들어 본적은 없지만 합창하는 소리를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만큼 감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순수한 칠레여 그대의 푸른 하늘이여, 잔잔한 실바람이 그대의 곁을 스쳐 가네, 꽃으로 수놓인 그대 벌판은 에덴동산의 환희를 빼 닮았네, 눈으로 뒤덮인 그대 웅장한 산맥은 신께서 내려 주신 요새, 고난 당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리니, 고난당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리니~~”

이렇게 보면 영웅과 의인은 애국자와도 동시적인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우리 독립 운동가들처럼 말이다.

3.1절이나 광복절이 되어도 집 앞 대문에 국기 하나 달 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많다. 태극기에 경례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태극기가 있는데도 굳이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을 오가는 사람도 있다. 한 평생 애국가 한 번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사람이 숱하다. 행사 때마다 애국가 부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대~한민국! 짜작작 짝 짝!”하는 소리는 영원할 것이다." 

농암 김중위
시인.수필가.
前 사상계편집장.
4선의원. 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헌정회 영토문제 특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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