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대마도까지

8.15해방이 되자 한민족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넘치는 기쁨으로 몸이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은 환희에 빠져 있었다. 특히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어서 조국으로 들어가 국권을 되찾아 새로운 정부를 꾸미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 누구도 우리의 영토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지를 연구해온 지도자는 없었다.
미·영·중이 함께 발표한 카이로 선언에서도 또 그 뒤에 있었던 포츠담선언에서도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한다고 천명하였으나 독립된 국가의 영토문제는 그들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몫이었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지도자들은 독도 또한 당연히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만 여겼을 뿐 그것이 일본으로부터의 시비대상이 되리라고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한 깊은 연구와 실천적 계획을 가지지 못했기에 우리의 영토조항은 제헌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정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반도 밖으로는 한번도 우리의 시야를 넓게 펼쳐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인도의 헌법이 미래에 취득할는지도 모를 영토까지를 염두에 두고 영토조항을 제정한 것을 보면서 우리의 경우는 지나치게 영토조항을 소극적으로 제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특히 지구의 기후변화로 상상할 수도 없는 지각변동이 일어나 육지와 해수면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앞으로 나라마다 영토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될는지도 모른다.

굳이 그런 경우를 상정하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중국이 동북공정을 역사적 사업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마당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영토가 과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를 확실하게 정립해 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영토를 잃어버린 것만도 천추의 한(恨)으로 남는데 하물며 잊어버리기 까지 한다면 얼마나 더 큰 한으로 남을 것인가 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의 역사왜곡이고 역사왜곡은 또 다른 형태의 영토침탈이나 점령의 서곡(序曲)이기도 하다. 이미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변방의 소수민족사로 격하시켜 자신들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킨 사실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드려야 할 형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고구려사나 발해사를 과거의 중국 조선족의 역사로 둔갑시켰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중국내 55개의 민족중의 하나인 소수민족의 역사로 왜곡한 것이다. 우리의 민족시인 윤동주도 그들은 중국의 조족시인으로 간주하려고 든다. 이들의 논리를 좇아가 보면 실로 가공할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고구려의 영토가 언제 대륙에 국한 된 적이 있었던가 해서다. 한수(漢水) 이북의 한반도 역시 고구려의 영토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이는 결코 그냥 듣고 넘어 가기에는 너무나 절박한 우리의 역사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후진타오가 일찍이 “한국의 일부 몰지각한 학자들이 간도 협약무효를 주장하는 등 자기들의 영토에 대한 연고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항 논리로 동북공정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중국의 동북공정이 지금 당장은 간도만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는 어디로 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간도협약이야 말로 무효임을 우리는 다시한번 밝혀야 할 것이요. 간도(間島 또는 墾島)가 우리의 영토였음을 주장해야 옳다. 간도협약이 도대체 무슨 협약인가? 1909년 9월 4일 <간도에 관한 일·청간 협약>과 <동삼성 5안(東三省 5案)에 관한 일·청협약>을 일컫는다. 북경에서 체결한 이 협약은 한국을 배제 한 채 9월 8일에 발표되었다. 한국은 아직은 외교권은 빼앗겼지만 나라는 엄연히 존재 했는데도 말이다.

일본은 이 협약을 통해 남만주 철도 부설권과 광산채굴권을 얻어 대륙진출의 교두보를 확보 한 반면 중국은 간도(오늘날의 동북 삼성)를 자기네 땅으로 편입시키게 된 것이다.
세상천지에 당사자를 배제한 채 남의 영토를 제3국이 제멋대로의 협약으로 영토를 주고받는 일도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협약으로 영토를 주고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영토는 절대 중국의 영토가 될 수 없음을 반증하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자기네 영토라면 무엇 때문에 영토획득을 조건으로 협약을 맺을 것인가? 난센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간도협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정부가 공식으로 주장했다는 기록을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나라를 되찾고 새롭게 세우는데 여념이 없기는 하였지만 우리의 불찰도 없지는 않았다고 여겨진다. 다만 간도 협약체결 95주년(2004년)이 되는 해에 여야의원 59명이 “간도 협약 원천무효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기록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간도 점유 100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는 “100년 시효설”을 그럴싸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다. 국제법 어디에도 또 국제관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강효백).

정부는 지금이라도 을사늑약이 무효인 것처럼 간도협약도 당연히 무효임을 천명해야 한다.
무효인 조약에는 시효가 없다. 무효는 영원히 무효일 뿐이다. 이것은 법의 일반원칙이다.
간도협약 또한 같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마도의 경우는 어떤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인 1948년 1월 미 군정당시에 설립된 과도정부 입법의원회에서는 입법의원 60명의 서명으로 대마도는 우리의 영토인 만큼 대일 강화회의에 반환요구를 하자는 의결을 한바 있었다.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도1948년 8월 18일 대통령 취임 후 제 일성으로 일본에 대해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9월 9일에는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이듬해인 1949년 1월 7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이런 말을하였다.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친 우리 땅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그 땅을 무력 강점했지만 결사 항전한 (대마도)의병들이 이를 격퇴했고 의병전적비가 대마도 도처에 있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1951년 4월 27일 한국정부는 미국무부에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냈다.
“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칭, 청구를 분명히 포기하고 그것을 한국에 돌려줄 것을 요청한다.”

2005년 3월 마산시의회에서는 “대마도의 날”을 제정하고 매년 6월에 그 기념행사를 한다고 한다. 창원시는 창원부 탄생600주년 행사로 지난 2008년 대마도를 탐방하였다. 이 탐방은 조선 세종 때 창원 출신인 최윤덕(崔潤德)장군의 대마도 정벌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난 18대국회에서는 여야의원 51명의 서명으로 ‘대마도 반환 촉구결의안“을 제출한 바도 있다.
이처럼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이라는 의식이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학자들이 그동안 수도 없이 밝힌 것이 있어 여기서 새삼스럽게 인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논거보다는 오히려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논거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많다”고 말한다.

또한 일본 사람들이 대마도를 “쓰시마(Tsushima)라고 부르는 그 이름도 어원으로 따지고 보면 우리말 “두개의 섬”이란 옛말 “두셤”에서 온 것이라 한다(류영남). 우리말 “두”가 구개음화된 “쓰"로 "셤”이 “시마”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섬(‘돌섬’이란 경상도 방언)이 독도가 되었듯이 말이다. 3~4세기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말이 있고 일본에는 말이 없었는데 어떻게 대마도(對馬島)라는 이름이 생겼을까하고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다.

지리적으로만 보아도 대마도가 우리와는 50km밖에는 안되지만(맑은 날에는 부산에서도 보인다) 일본의 구주본도와의 거리는 147km나 된다는 점에서 대마도가 우리의 땅이지 어떻게 일본의 땅일 수 있을까 싶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대마도는 분명히 우리 땅인데도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영토문제에 등한히 했기 때문에 일본에 빼앗긴 것이 아닌가 해서 여간 분하고 원통한 일이 아니라 여겨진다.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내내 각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날 적마다 수도 없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런 그의 기개와 기지를 우리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그 뒤에도 끊임 없이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고 그 반환을 요구했더라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나올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왜 영토문제가 없겠는가? 녹둔도가 있다. 녹둔도는 두만강 하류에 둘레 8km밖에 안되는 작은 섬이다. 일찍이 그 섬을 여진족으로부터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하여 당시 조산만호(造山萬戶)벼슬에 있던 이순신 장군이 자칫 죽임을 당할 뻔했을 정도로 소중하게 여겼던 엄연한 우리의 땅이었다.

그런데도 태평양쪽의 항구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러시아의 힘에 밀린 청나라가 이 땅을 1860년에 “북경조약”을 통해 러시아영토로 만들어 주고 만 것이다. 그 외에도 압록강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과 우리들이 강동(江東) 또는 원동(遠東)땅이라고 불렀던 연해주 등 우리의 고토(故土)는 부지기수다. 북한의 영토변화도 우리는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억울하게 지금까지 남의 영토로 되어 있는 우리의 영토문제를 지금이라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잃은 것도 억울한데 잊혀지는 것은 더욱 억울할 것 같아서다. 우리에게는 다물(多勿)정신이 있다. 고토회복 정신이다(麗語謂復舊土爲多勿). 잊지 말아야 할 정신이다.

농암 김중위
시인.수필가.
前 사상계편집장.
4선의원. 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헌정회 영토문제
특별위원회 위원장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