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과 한민족 <11>

▲ 우창수
민족사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bwwji24@naver.com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신인류가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사실은 서구 역사학계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서구 역사학계가 인류사에 눈을 뜬 시기는 1850년경이다. 서구에서 이때 역사학이 처음 태동했다. 역사학이 태동하고 나서 서구 역사학계가 곧바로 앞 다투어 달려간 곳이 중앙아시아의 흉노고지였다. 유럽인의 선조들이 중앙아시아의 흉노고지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1860년경부터 서구 열강은 원정대를 파견하여 중앙아시아에서 유물들을 대대적으로 발굴해갔다. 말이 발굴이지 유적지를 마구잡이로 파헤쳤다.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스타인, 독일의 폰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미국의 랭던 워너, 일본의 오타니가 자국 원정대를 이끌고 가서 중앙아시아 흉노고지의 유물들을 채집해 간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1860년경부터 1830년경까지에 걸쳐 수백만 점의 중앙아시아 출토 유물들을 자기 나라로 끌고 갔다. 러시아가 확보해 간 중앙아시아 유물들도 수백만 점에 달할 것이다. 저 땅이 인류의 기원지,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는 《삼성기》의 고증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영국인 피터 홉커크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답사한 후 《실크로드의 악마들, 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이란 책을 출간하여 1981년 영국 도서상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중국이 유물 반출에 대한 금지령을 내릴 때까지, 그들은(위에서 열거한 인물들) 경쟁적으로 실크로드의 사라진 도시들에서 벽화·필사본·조상彫像·그 밖의 유물들을 말 그대로 톤 단위로 빼내갔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격분에도 아랑곳없이, 이 방대한 중앙아시아 수집품은 최소 13개국의 박물관과 연구기관들에 흩어져 있다. 그 중 어떤 것은 관리 소홀과 자금 부족으로 지금도 망가져가고 있는데, 더욱 애석한 것은 많은 유물들이 이미 과거에 행방불명되었거나 파괴돼 버린 것이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모든 수집품을 다 관람하려면, 인도, 일본, 러시아, 미국, 대만, 한국, 스웨덴, 핀란드,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중국을 찾아가서 30개가 넘는 시설들을 방문해야 한다.

 유물을 빼내갔던 탐험가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한가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을 파견한 정부나 연구 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놀라운 유물과 중앙아시아 및 중국 연구에 기여한 공헌으로 인해 존경과 추앙을 받았다. 스타인과 헤딘은 둘 다 영국인이 아니었지만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한편, 중국인들은 그때 그들의 고고학 활동을 전혀 막지 않았으면서도 오늘에 와서는 매우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스타인, 펠리오, 르콕 같은 자들은 학자의 탈을 쓰고서 자신들의 역사를 강탈해 간 파렴치한 투기꾼에 불과하다. 실제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서방 인사들도 적지 않다.”라고 썼다.

 이 이후에도 중앙아시아 흉노고지의 유적들은 중국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도굴되고 파헤쳐졌는데, 얼마나 많은 유물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금도 중국 정부는 군사 작전하듯 은밀한 방법으로 중앙아시아 흉노고지의 유물들을 줄기차게 발굴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무지막지한 역사공작을 생각할 때 중앙아시아 흉노고지의 유물들을 일찌감치 유럽 각국이 끌고 간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어쩌겠는가? 저 땅이 대한 겨레의 선조가 인류 문명을 발원시킨 곳이고, 저 유물들 중에 대한 겨레 선조들의 혼백이 서린 유물들도 많건만 후손들이 못나서 지켜주지 못하는 것을 어쩌겠는가? 우리는 앞에서 원동중의 〈삼성기〉가 흉노고지에 환인들의 나라가 있었다고 고증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강단사학계는 저 땅에 선조들의 혼백이 깃들어 있는 사실을 지금도 막무가내 부정한다. 이 밤에 땅을 치며 통곡한들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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