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고사리를 따고 산에서 내려오다 들판으로 나갔어요. 무리 지어 자라는 쑥부쟁이를 캤지요. 집으로 돌아와서 돌나물을 뜯고 쌈채를 뜯었어요. 야채를 씻어 건져놓고 쑥부쟁이를 데쳐 나물을 무쳤어요. 그리고 배추꽃을 꺾어와 물병에 꽂아 놓았어요. 진달래 꽃잎과 배추꽃잎으로 화전을 만들었습니다. 남편이 퇴근 후에 수련원에 가 있는 선생님들을 위문하러 간다고 했거든요. 남편과 의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왕복 다섯 시간을 소요하는 길이 무료할 것 같아 따라가자고 생각했지요. 명색이 위문이니 빈손으로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촌스런 음식 몇 가지를 준비했어요. 화전, 쑥부쟁이 나물, 돌나물, 장아찌를 조금씩 담았어요. 남편은 생각보다 일찍 집에 왔어요.
저녁 먹을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는 통에 부랴부랴 집을 나섰어요. 금호 방조제를 돌아가는데 바다에 떨어지는 해가 어찌나 붉은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지경이었어요. 지는 해를 보면 마음이 괜히 슬퍼져요.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기도 하고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너무 멀리 와 버린 기분이 들기도 해요. 해는 바다에 연한 산들을 붉은 치맛자락으로 감싸는 듯하면서 사라집니다. 그 찬란함을 보면서 인생도 사라지는 순간에 그처럼 찬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해남 강진을 거쳐 완도에 닿았어요. 수련원은 산에 포근히 안긴 모습으로 들어앉아 있습니다. 학생들이 수련원 운동장에 모여 캠프파이어를 하고 촛불 행진을 했어요. 선생님들의 숙소에 들어가니 낯익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사립 학교라는 특성 때문에 별다른 이동이 없으니 동료 교사들 사이의 정이 돈독한 것 같아요. 남편의 동료 교사들이 저를 반갑게 맞아 줍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 그러는지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것 같아요. 얼굴은 언제나 동안이고 표정도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해요. 늦은 저녁밥을 먹고 학생들처럼 촛불을 켜놓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격의 없이 나누는 대화가 재미있지만 돌아가야 할 길이 멀어서 오래 머물 수 없어요. 그곳을 떠나오는데 모두들 주차장까지 배웅해 줍니다. 쑥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지요.
저는 남편의 동료 교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슴 깊이 품고 있습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작은 아이는 1학년부터 남편의 직장을 놀이터 겸 휴게소로 이용했거든요. 학교에서 끝나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며 교무실이나 숙직실에서 놀고 있으면 아무래도 철없는 아이들이라 거슬리는 일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선생님들은 제 아이들을 예뻐해 주고 묵인해 주었어요. 다른 직장에서라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어요. 기회가 있으면 고마움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아무런 표시를 못했어요. 선생님들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저는 교사들이야말로 세상을 키우는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오는 길은 영암 쪽으로 택했어요. 어두워서 월출산을 볼 수는 없지만 그 기운을 느낄 수는 있지요. 월출산은 춤추듯 아름다운 산입니다. 저는 이 지방에 춤추는 산이 셋 있다고 생각해요. 월출산과 유달산과 승달산이지요. 유달산을 한량무에 비한다면 월출산은 살풀이춤에 비할 수 있고 승달산은 고깔 쓰고 승무를 추는 것 같아요. 월출산이 내뿜는 기운은 신령스러워요. 보는 각도에 따라, 날씨와 기온에 따라 달라 보이는 그 산의 자태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영암을 지나왔어요. 반남과 공산을 지나 학다리로 들어서자 나비 동산의 나비 모양 점멸등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이제부터 내 터전이다 싶대요. 귀소 본능을 지닌 동물처럼 말이지요.
집에 돌아오는 동안 왠지 기분이 좋았어요. 밤길을 달리는 내내 수련원에서 만난 분들의 온기가 마음을 흐뭇하게 했거든요. 그분들을 찾아가서 위문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온기를 확인하고 온 것 같았지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집에 닿았습니다. 공동마당에 서서 심호흡을 하며 공동마당 넓이만큼 열린 하늘을 보았어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한층 정답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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