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모처럼 시내에 나갔습니다. 제가 목포에 가는 일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일이지요. 친구를 만나거나 뜨개질 할 실을 사거나 바느질 할 재료를 살 일이 있을 때 나가요. 마을에서 목포까지 나가자면 차를 세 번씩 갈아타야 하는데 그나마 여의치 않습니다. 오늘은 주말이라 남편이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저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어요. 둘이어 드라이브 겸 데이트를 하는 재미도 있지요. 차를 타고 가면서 보니 들판에 봄기운이 완연하더군요. 산에는 철쭉이 한창이고 나무들의 연초록 이파리들이 꽃처럼 고와요. 도시가 가까워질수록 하늘에 황사와 스모그가 심해집니다.
남편이 근무하는 학교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걸었어요. 바느질 부속 파는 곳에서 단추와 지퍼를 사야 합니다. 아이들 여름 잠옷도 사야 해요. 차 안 다니는 길을 기웃거렸어요. 남편과 손잡고 걸어가는데 다가와서 인사하는 학생들이 자주 눈에 띄어요. 우리가 손을 잡고 다니니까 웃는 학생도 있고 제 얼굴을 보려고 짓궂게 앞을 막아서는 학생도 있어요. 남편이 학생들과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교사라는 직업이 천직이다 싶어요.
모자 파는 상점 앞에서 저절로 걸음이 멈춰집니다. 저는 모자를 즐겨 쓰고 다니거든요.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모자 쓴 여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가 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편리해요. 시골에 살면서부터 미장원에 간 적이 없어요. 여건이 맞지 않으니까 현실에 적응하는 셈이지요. 집에서는 긴 머리가 귀찮으면 비녀를 꽂지만 외출할 땐 머리를 늘여 땋고 모자를 쓰면 그만이지요. 자외선을 많이 받아야 하는 실정이니 파라솔을 드는 대신 모자를 쓰는 것이 편리해서이기도 하고요. 얼굴이 작아서 모자가 잘 어울린다고 남들이 말하니까 정말 그런 줄 착각해서이기도 하지요. 모자를 즐겨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한발짝 물러서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고 해요. 아닌게 아니라 저는 낯가림이 심한 편입니다. 낯선 사람과 얼른 친해지지 못하지만 일단 사귀면 깊이 빠져드는 편이지요.
모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큰 도시라면 다양한 모자를 파는 곳이 있을지 모르지만 선뜻 집어들고 싶은 모자가 없네요. 요즘에는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는 모자를 쓰기 위해서 뜨개질로 만들어요. 초록 빛깔 모자, 호박 모양 모자, 구멍이 숭숭 뚫린 모자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어요. 생각 같아서는 옛날 기생들이 쓰던 모자나 너울이 달린 모자를 만들어 쓰고 싶지만 너무 파격이다 싶어 자제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내에 나오면 항상 만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는 몸과 마음이 아름답고 순수한 사람이에요. 그녀의 남편도 그런 사람이지요. 제 남편과 그녀의 남편은 서로 친한 사이입니다. 그녀는 시장에서 건어물 상점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김 굽는 기계도 있는데 어떤 김보다 맛이 좋아요. 저는 겨울이면 친구의 김을 일본에 사는 여동생에게 부쳐주곤 합니다. 친구가 자기 남편에게 전화해서 같이 만나기로 했어요. 그렇게 넷이 만나기는 일년 만인 것 같습니다. 그녀 남편의 제안으로 오리탕 집에 갔어요. 사람들은 목포 하면 생선회나 홍어나 세발 낙지를 떠올리지만 저는 목포에 와서 오리탕을 처음 알았습니다. 오리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냥 오리탕과 약오리탕이어요. 약오리탕은 뚝배기에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고 찹쌀을 넣어 끓인 영양죽이고, 오리탕은 쌀과 들깨를 갈아 만든 국물에 미나리를 듬뿍 넣어 먹는 음식이지요. 오리탕을 주문하면 식탁에 커다란 바구니 가득 미나리가 놓여집니다. 미나리를 살짝 익혀 건져 먹고 다시 익히기를 반복하는 동안 한 바구니의 미나리를 먹게 돼요. 시방은 다른 곳에서도 오리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해독 정화 작용이 뛰어난 미나리를 그렇게 만들어 먹기 시작한 이 고장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여요.
배부르게 오리탕을 먹고 기분 좋게 소주도 마셨어요. 돌아오는 길에는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이 나서 과자와 과일을 샀어요. 운전을 잘 하는 제 남편은 술을 한 모금도 못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저는 운전을 할 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음주 운전을 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지요. 공동마당에서 내려 길게 심호흡을 했어요. 하늘엔 별이 반짝이고 맑은 공기가 상쾌합니다. 그런 하늘 아래 서 있으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산짐승들은 둥지를 떠나기 싫어하는 습성이 있다고 해요. 저도 산골에 살면서 점점 산짐승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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