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606- 단골손님

올 봄에는 유난히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우리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사는 방식처럼 살고 싶지만 용기가 없거나 여건이 맞지 않아 도시에 사는 벗들도 있고 시골의 향수가 그리워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요. 빛깔 좋은 술이나 향기 좋은 술이 생각나서 오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 사람들 중에는 언제든 찾아와도 술을 내어 준다고 해서 우리 집에 술샘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도 있어요. 제가 만든 밑반찬이 생각나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친구는 제가 만든 죽순 장아찌는 다른 곳에서 쉽게 먹을 수 없다나 하면서 좋아하대요. 어떤 친구는 마늘쫑으로 만든 장아찌가 맛있다고 싸 달라기도 해요. 저는 밑반찬으로 쓰기 위해 일년에 한두 번 강경에 가서 젓갈을 사오기도 하는데 제가 직접 만들지 않은 젓갈인데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저와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동질감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요.
오늘 찾아온 손님은 일가족 세 명인데, 가족 신문을 만들어서 다달이 부쳐준답니다. 남편은 시를 쓰고 아내는 수필을 쓰고 딸은 소설을 연재하지요. 그들이 가족을 이룬 내력이 재미있어요. 한 여자가 스님이 되려고 산에 들어갔는데 스님은 되지 않고 스님 한 분을 환속시켜 결혼하고 아이 낳아 복잡한 세상에 좌충우돌하면서 살아간답니다. 약삭빠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속세에 살아도 부부의 얼굴은 동자승처럼 맑고 순수해요. 지금은 우리집에 자주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 되었지요. 자연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고구마를 삶아놓고 텃밭으로 나갔어요. 이곳에서 박쪽나물이라 불리는 나물을 캐어 삶아놓고 뒷밭으로 갔어요. 요즘 들어 날씨가 따뜻한 탓에 갈색 새싹을 내밀었던 부추가 초록색으로 변해 나풀거리고 있더군요.
버스듬한 언덕에 돌나물이 수북이 자랐어요. 돌나물은 말 그대로 돌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입니다.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거름기가 없어도 잘 자라지요. 돌나물은 잘 크라고 화학 비료를 주면 오히려 죽어 버립니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많이 쓰는 요즘 들판에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지만 번식력이 왕성한 풀입니다.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세력을 넓히니까 잡초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어요. 노랗고 자잘한 꽃이 피어나면 꽃밭으로 변하기도 하지요. 음식의 재료도 되지만 약리 작용도 훌륭하지요. 화상을 입었을 때 생즙을 내어 바르면 좋거든요. 남편은 화분에 심어 가꾸라며 도시의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지요. 돌나물을 화분에 심어 놓으면 자라는 대로 칼로 잘라먹기 편리하거든요. 초고추장에 무쳐 먹거나 양념간장에 무쳐 먹거나 물김치를 만들어 먹어도 좋아요.
공동마당에 차 멎는 소리가 들리고 닮은꼴인 세 식구가 들어왔어요. 삶은 고구마를 내어주니 좋아하는 것이라며 달게 먹더군요. 오늘은 배추꽃으로 화전을 만들었어요. 찹쌀 반죽에 노랗고 자잘한 꽃을 떼어 서너 개 붙이고 쑥 잎을 붙이면 화사한 꽃밭이 되지요. 배추꽃은 화전의 재료로도 사용하지만 노랑나비 흰나비를 불러모으는 재주가 있어서 해마다 텃밭에 심어두지요.
보름달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모닥불을 피웠어요. 마침 마을에서 통돼지를 잡은 집이 있어 얻어온 고기로 숯불구이를 했지요. 고기를 굽다가 돌 위에 묵은 김치를 올려놓고 익히면 군김치가 돼요. 대부분 그 맛을 다 좋아해요. 스님이었던 그 댁 남편은 절에서 즐겨 먹었다던 고수를 특히 좋아해요. 고수를 다져 달래장아처럼 양념장을 만들어 밥 비벼 먹으면 좋다는 것도 그분이 알려주었어요. 술을 안 마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은 점이 있어요. 맑은 정신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고요. 그분들은 언젠가 다시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해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절을 짓고 동백과 차나무를 심어 가꾸겠다고 합니다. 부인은 공양주 보살이 되어 절 밥을 실컷 먹게 해주겠다고도 하고 방학이 되면 한달 동안 지내다 가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자지만 그런 절이라면 편견없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분들이 우리의 단골 손님이지만 그때가 되면 우리가 그들의 단골손님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분들은 올 때마다 직접 내린 멸치 액젓을 가져다 줍니다. 맛이 어찌나 좋은지 저는 멸치 액젓으로 장아찌도 만들고 국이나 찌개, 나물의 간도 하지요. 돌아갈 때가 되니까 섭섭해요. 모이진 달걀이 서른 개쯤 되어요. 달걀과 그 댁에서 가져다 준 멸치 액젓으로 만든 장아찌 무침밖에 싸 줄 것이 없네요. 엄마 아빠를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는 그 댁 딸이 공동마당에서 공손하게 인사를 합니다. 차 밖에 인사하고, 차 안에서 인사하고, 차 빼어서 인사하고, 차 돌리고 인사하고, 시야에서 멀어질때 인사하고, 부부는 물론이고 딸에게까지 존칭을 쓰는 그 댁 식구들이 떠나기까지 답례를 하느라 우리 가족들은 수도 없이 인사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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