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마당에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남편의 친구 가족이 놀러 왔어요. 제 남편과 그 친구는 참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며 지냅니다. 마음씨 착한 부인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설거지를 도맡아 한답니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진 다음에도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기는 이웃이라고 할 수 있지요.
텃밭에 나가 보쌈 재료들을 채취해다 씻었어요. 그들은 우리 집에 다니면서 향기가 독특한 고수의 맛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남편은 친구에게 주려고 고수와 돌나물 심은 화분을 두 개 만들어 주었어요. 고수와 돌나물은 화분에 심어두고 이파리만 떼어먹어도 되는 식물이거든요. 나무가 타서 숯이 되는 동안 마당에 식탁을 늘어 놓고 밑반찬이 대부분인 음식들을 날라다 놓았어요. 낮에 심하게 불던 바람은 해가 지면서 잠잠해졌어요. 벌겋게 단 숯을 남편이 제작한 불 판에 담고 그 위에 제 친정에서 가져온 익산석을 올려놓았어요. 마을 사람들도 불렀지요.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그 친구 가족과 스스럼없는 이웃이 되었어요. 삼겹살과 버섯을 굽고 김치도 구웠어요. 삼겹살을 구울 때 묵은 김치를 같이 구워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지요. 마침 이웃집에서 정미기에 찧어준 새 쌀로 밥을 지었지요. 장소를 조금 옮겼을 뿐인데 마당에서 먹는 밥은 훨씬 맛있어요. 삼겹살을 다 굽고 물오징어를 구워먹으면 통통하게 훈제된 그 맛도 일미지요.
남아있는 숯불에 커다란 주전자를 올려놓고 칡 차를 끓였어요.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모닥불 주변으로 의자를 놓고 앉아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차를 마십니다. 하늘엔 초승달이 노랗게 떠 있고, 오리온 자리가 나비 모양으로 우리 머리 위에 떠 있어요. 밤바람에 매화향기가 날리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밤은 정겹게 깊어 갑니다. 탁 탁 소리내며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빨려들 것 같아요. 오래 전에 죽은 소나무에서 송진이 지글지글 끓고 감나무 둥치에서는 하얀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그렇게 타는 나무들을 보면, 나무는 죽어서도 몇 십 년 산다는 말이 실감나요. 시퍼렇게 활활 타오르는 밑불을 보면 나무의 혼이 마지막으로 산화하며 그렇게 황홀한 춤을 추는가 싶습니다. 탁자에 깔았던 종이를 모닥불에 올려놓으면 종이재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요. 타면서 길게 꼬리를 물고 올라가는 불티는 유성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은 마지막으로 모닥불에 대나무를 몇 개 올려놓습니다. 대나무는 타면서 펑펑 터집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가 멍멍할 지경이에요. 폭죽 놀이는 아름다운 봄밤의 마당놀이를 축제처럼 들뜨게 하는 시간이지요. 지금은 폭죽을 화학 제품으로 즐기지만 폭죽의 어원은 대나무가 터진다는 뜻의 한자말입니다.
초저녁잠이 많은 마을 사람들은 눈을 비비다가 돌아가고, 남편의 친구는 조금만 더 놀다 가자는 아이들을 달래 공동마당으로 나갑니다. 우리는 공동마당에 서서 별을 바라보며 헤어지는 섭섭함을 달래지요. 오늘은 남편이 스피카라는 별을 알려주었어요. 우리는 2주일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친구 가족을 배웅했어요. 그러다보니 11시가 되었어요. 마루에 올라서서 캄캄한 마당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사라진 마당에 사그라지는 모닥불이 마지막 힘을 모아 호롱불처럼 빛나고 있어요.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