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저 작


마당에 있는 매화나무 가지 꼭대기까지 꽃이 피었지요. 그 꽃을 보다가 문득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언젠가 가 보았던 해남의 매실농원이 생각났습니다. 이제 다 자라서 엄마 아빠 따라다니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구슬려 집을 나섰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차 안이 덥게 느껴졌어요. 광주 목포간 도로를 따라가는 길엔 차들이 유난히 많더군요. 우리처럼 나들이 나선 사람들이 아닌가 싶대요. 길가에는 개나리가 반쯤 피었어요. 가끔씩 산비탈에 피어난 진달래가 보이기도 했지요. 우리 마을은 산 속이라 아직 개나리나 진달래는 구경도 할 수 없는데 말이지요.
목포 외곽을 돌아 금호 방조제 쪽으로 갔어요. 전에 있던 구불구불한 길 대신 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려 있었어요. 금호 방조제는 산이면의 바닷길을 막아 아주 넓은 육지를 만들어 놓은 둑이지요. 바다였던 곳 어딘가에는 공룡 발자국이 찍힌 바위도 있어요.
우리는 이곳에 가끔 낚시하러 온 적이 있었어요. 늦가을이면 갈치낚시가 잘 된다고 해서 낚시꾼들이 방조제를 메울 듯 모여들거든요. 야광찌를 늘이고 죽 늘어선 낚시꾼들의 행렬은 장관을 이루지요. 갈치낚시의 묘미를 빛깔의 현란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형광색으로 빛나는 몸짓은 환상적이었지요. 갈치로서는 마지막 몸부림이겠지만, 몇 사람이 죽은 바다 쪽으로 낚시를 던지고 있네요. 넓은 바다에 낚시를 던지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참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실농원에 도착하니 생각처럼 매화가 만개해 있더군요. 끝간데 없이 펼쳐진 매화를 보니 꽃밭도 아니고 농원도 아닌, 꽃 바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지 가득 넘쳐나는 꽃과 향기를 따라 걸으며 마음이 점점 질펀해지고 흥건해지고 가물가물해졌습니다. 우리말고도 소풍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사람들이 꽃을 보면서 꽃처럼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어요. 벌들이 사람들보다 더 많고요.
농원 가장자리에 울타리처럼 빙 둘러선 재래종 동백들이 선홍색 꽃송이를 매달고 있더군요. 우리는 농원 깊숙이 걸어 들어갔습니다. 입구에도 많은 매화나무가 있지만 안으로 쭉 들어가서 관리인이 사는 것 같은 건물 앞으로 가면 고목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있지요. 우리도 남들처럼 사진을 찍었어요. 장차 만화가가 꿈인 큰딸은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포즈를 취해서 웃음을 터뜨립니다. 얌전한 막내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멋쩍어서 연신 어색한 미소만 지어요.
남편은 나름대로 포즈를 취한다며 고개를 숙이고 사색에 젖은 사람의 표정을 집니다. 저는 그런 남편에게 집 나온 사람 같다고 놀리며 웃었지요.
매화나무 아래에도 꽃밭이 펼쳐져 있어요. 냉이와 광대나물과 별꽃나물이 꽃을 매달고 흐드러지게 피어났어요. 풀 사이에는 쑥들이 수북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닐봉지를 들고 쑥을 뜯기도 하더군요. 매화나무 사이에 옆으로 나란히 솟아 있는 봉분들이 있었어요. 별다른 장식물이 없는 그 무덤들은 아마도 농원의 조상들 아닐까요? 꽃과 향기가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농원 가운데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별다른 장식은 필요 없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무덤이 있는 잔디밭에 돗자릴ㄹ 펴고 음식을 먹으며 웃고 있더군요.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이 한데 어울려 더욱 친숙한 정경을 자아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농원이 10만 평이나 20만 평은 될 것이라고 말했어요. 큰딸은 그냥 아주아주 넓은 농원이라고 제 말을 정정해 주었어요. 농원이 술 만드는 회사 소유라서 그런가, 꽃 속에 서 있는 동안 저절로 취하는 기분이에요. 꽃구름 아래 누워 꽃향기 맡으며 잠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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