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수의 미술이야기-1

 

 

 

 

 

최문수
공공미술가. 설치미술가. 김포미술협회 자문위원.
경기도미술협회 공공미술분과 위원장. 김포공공미술발전소 대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사전에 정의된 의미로서의 미술은 아름다움을 시각적,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의 한 종류를 뜻하며, 일반적인 미술의 범주에는 그림, 서예, 조각, 건축, 공예, 디자인 따위가 포함된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미술에 대한 이미지도 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와 같은 생각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미술의 범위가 넓어지고, 불분명해졌으며, 그 성격 역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 전문가에게 미술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한마디로 명쾌한 답을 내려주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없을 것이다. 그것은 현대미술이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리다. 기원전 수 세기 전부터 거슬러 내려온 역사 속의 미술은 언제나 그 시대에 통용되었던 가치를 추구해왔다. 작품 속 조화로운 인체의 비율이 최고의 작품을 꼽는 기준이 되었던 적이 있었던 반면, 인체비율 따위는 무시하고 주제와 상징성을 전달하는 것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때도 있었다. 이처럼 각 시대의 미술 작품은 당대의 정신과 분위기를 필연적으로 반영해 왔고, 이는 현재 진행형인 오늘날의 미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로 지금, 현대의 미술은 '다양한 시각'이라는 두루뭉술한 기준에 따라 똑같은 것을 놓고 훌륭한 미술 작품이라 평가하기도 하고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특징을 내세운다.

1991년,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DamienSteven Hirst, 1965-)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상어의 시체를 넣은 작품을 전시하여 미술계는 물론 대중을 경악시켰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유골에 800여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혐오스럽기까지 한 작품들이 미술품 수집가들에 의해 수백억 원의 고가에 팔려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샘(The Fountain)>, 1917
시대를 100여년 거슬러 올라가 1917년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은 남성 소변기에 달랑 서명만 해서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내놓았다. 뒤샹의 작품은 당시에는 미술을 모독하는 사건으로 판단하여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해 전시조차 되지 못하였으나, 이후 작가의 의도를 받아들였으며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물건을 활용한 미술이라는 평으로 현대미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똑같은 작품이 혐오의 대상이었다가 찬양을 받기도 하는 이유는, 미술이라 정의하는 기준이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미술 작품이 작품그 자체로 가치를 지녔다면,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가장 중요시 한다. 더불어 감상자의 느낌, 그 작품이 설치된 장소와 시대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현대미술에 대한 설명의 시작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단일한 가치관으로 평가할 수 없는 복합적인 것이 미술이라면, 오늘날에는 누구나 창작을 하고, 작품을 내놓고, 본인이 미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대답부터 말하면 '그렇다'이다. 현대미술에서는 더 이상 완벽한 비례를 통한 구조적인 안정성이나, 신비한 분위기를 통해 종교적인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감각적인 회화에서부터 썩은 생선까지 모두 미술이라 지칭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화가 지망생들의 소질 유무를 가르는 기준이었던 '조형감'과 '색감'만으로는 미술가의 자질을 평가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의 많은 미술대학이 입시전형의 실기시험을 폐지하고 면접과 포트폴리오 등으로 예비 미술가의 자질을 평가하는 것이고, 이는 지금도 많은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대미술의 기준은 모호하며, 무엇이든지 미술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미술가가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든지 미술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아무거나 미술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 듯 작가의 아이디어, 즉 개념부터 물리적인 결과물에 이르기까지작품의 일부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은 많다. 그러나 어떠한 창작품, 또는 기성품을 두고 미술이다 아니다 단정 지을 수 있는 명쾌한 기준도 없다. 이렇게 애매하고 어려운 것이 현대미술이지만 그 아리송하고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매력 탓에 필자가 삼십 년이 넘게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리라.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