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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운(林圭雲) 변호사·前 서울고등법원장향토를 빛낸 출향인사
   
 
   
 
군법무관 시작,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장 역임, 92년 변호사 개업
‘기소불욕(己所不慾)이면 물시어인(勿施於人)’의 정신으로 한평생 살아
김포, 명문고 육성·대학 유치 등 교육도시로 거듭나야 발전할 수 있어


한양합동법률사무소에 들어서니 사무실 앞에 단정한 글씨체의 액자가 걸려있다.
‘법관의 귀감으로서 오랜 기간 봉직하시다 물러나시는 임규운 원장님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서울고등법원 법관 일동. 1992년 8월.’
1933년 고촌면 신곡리 은행정마을에서 태어난 임규운(林圭雲·72) 변호사는 고촌초등학교(9회)와 인천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2년 뒤인 59년에 제11회 사법고시에 합격, 61년 군법무관으로 시작해 대구지방법원 겸 김천지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수원지원 판사,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형사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쳐 81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겸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이후 법원행정처 차장, 서울민사지방법원 원장, 서울고등법원 원장 등 요직을 거치며 유능한 법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92년 서울고등법원장을 끝으로 판사직을 은퇴하면서 강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 현재 서초구 양재동에 선·후배들과 함께 공증인가 한양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 거주지는 강남구 개포동, 부인 신필재 여사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6.25 전쟁 전까지 소년 임규운은 의사가 될 꿈을 꾸었다. 그런 생각을 품었던 이유는 고촌초등학교 5학년 때 부친이 간경화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별 진전없이 퇴원하여 돌아가셨기 때문. 그런 연유로 의사가 되어 많은 환자를 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천중학교 시절, 마침 인천재판소 밑에 살던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재판하는 것을 보게 되면서 전쟁의 와중에 동리 사람들이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등의 위반으로 인천법원에서 재판 받는 것을 보고 억울한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가려내는 법관이 되겠다는 꿈을 새로이 갖게 되었다.
임 변호사는 2남1녀의 막내로 형은 고촌면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40살에 타계, 형수와 조카가 아직 고촌에 살고 있고, 누나가 인천에 살아 중·고등학교를 거기서 다녔다. 학생시절, 주중에는 인천에서 학교 다니고 주말에는 꼬박꼬박 어머니를 뵈러 고촌에 내려왔다. 어린시절의 추억을 물었다. “그땐 고촌 수로에 물고기가 많아서 물고기도 잡고 수영도 하고 놀았지요. 겨울이면 꽝꽝 얼어서 썰매도 실컷 타구요. 학교 갔다오면 어머니 도와서 소 풀도 뜯기고…. 동문체육대회에 참석할 때마다 이런저런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지금같은 축구공이 어디 있었나요. 우리는 새끼 말아서 축구공을 만들어 차고 논 세대거든요. 돼지오줌보에 바람 넣어서 차기도 했구요. 그랬던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열고 월드컵까지 개최한 나라가 됐으니 대단하다 싶고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때 같이 공 차고 놀던 친구들 중에 6.25때 행방불명된 이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김남춘 재경김포향우회 회장 등 고향 지인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김포 얘기가 화제로 오른다. “고향을 아껴서 걱정을 하는 정도지 내가 고향을 위해 무슨…”이라고 하면서도 임 변호사는 “김포의 교육열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일 중요한 건 교육이므로 명문 학교를 만들고 대학도 유치해야 시민들도 김포에 애정을 가지고 타 지역으로 이사가지 않는다는 것. 그의 지론에 따르면 기초교육은 모두 다 공평하게 시켜줘야겠지만 학생 개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명문 학교를 만들어야 도시가 발달한다.
그는 학부모들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자기 아이만 1등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되며 기초질서를 지키게 하고 민주주의 기본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공민교육으로 한 사람의 국민으로 먼저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영어 못해도 기본적 공민교육이 우선입니다. 학업성적이 뒤떨어져도 대학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돼요. 또 본인의 소질을 살려야지 부모 욕심으로 끌고 가면 안될 일입니다.” 그런 교육철학 덕분인지 임 변호사의 자녀 2남2녀 중 큰아들은 부장판사, 사위는 부장검사로 재직 중이며 둘째아들은 의사·연세대 교수로, 큰딸은 서울대 영문학 박사 출신이고 둘째딸은 서울대 약학 박사로 암센터에서 근무하는 등 각계 중진급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인중(仁中) 6년제 5회 동기회’가 펴낸 ‘지학(志學)과 이순(耳順)’이란 책자에 실려있는 임 변호사의 원고를 보면 그의 인생관이 잘 나타나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여 법관이 되기까지 고시생들이 대개 그렇듯이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란 글귀를 머리맡에 붙여놓고 법률교과서에만 매달리다보니 흔히 말하는 미시적(微視的) 해석 법학의 새장 속에 갇힌 법학도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중학시절 은사였던 이인수 선생님이 내게 ‘논어’에 나오는 ‘기소불욕(己所不慾)이면 물시어인(勿施於人)’이란 글귀를 선사했다. 이 말은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사회에 나아가 사람을 사귈 때에는 귀빈을 대하듯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는 제사를 지내듯 신중·경건히 하며 내가 원치 않는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그리하면 조정에서 정사를 볼 때 나라의 원망이 없을 것이고 은퇴하여 집에 있어도 원망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스스로 꾀를 부리고 힘든 일을 기피하고 싶을 때마다 이 글귀를 되뇌었다. ‘기소불욕(己所不慾)이면 물시어인(勿施於人)’에서 오는 겸허한 마음가짐이야말로 인생의 큰 가르침이었다.’
/강민주 기자 jk@i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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