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령 목사 <한돌감리교회>



지금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불행하십니까?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그럭저럭 살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은 다 가졌던 <나폴레옹>은 지배와 소유의 정상에서 인생의 성취감도 누렸지만 죽을 때 그는 『내가 진정 행복했던 때는 단 6일밖에 없었다』고 고백했을 만큼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헬렌 켈러>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말년에 과거를 회상하며 말하기를 『내 인생은 기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행복을 소원하며 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한다. 무엇이 행복일까? 부자가 되는 것, 높은 관직에 앉은 것,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 보이는 현실을 보고 성공이나 행복을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이 기쁨과 슬픔의 양면성이 수 없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펜실바니아 대학 심리학과 <길슨>교수는 슬픈 얼굴과 기쁘고 밝은 얼굴의 사진 두 장을 상자 안에 나란히 붙여놓고 상자에는 두개의 구멍을 뚫어, 사람들이 두 눈을 대고 상자 속을 들여다보게 했다. 어떤 이는 슬픈 얼굴이, 어떤 이는 기쁜 얼굴이 보인다고 각각 대답했다.
실험을 통해 그는 자신과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차이가 어느 쪽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 지를 결정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세상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슬픈 얼굴의 그림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람의 눈에는 기쁜 얼굴의 그림이 들어왔던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요인은 첫째는 가치관이요, 둘째는 습관이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무엇일까요?幸(행)은 ‘행복하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한자이다. 이 幸자에 가로된 막대기(一) 하나가 없으면 고생을 의미하는 辛(신)자가 된다. 불행한 것은 한 가지가 모자라서 그렇다.
그 모자란 것 하나만 채우면 누구든지 행복해 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모자란 한가지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극복되어진다.
행복은 욕망과 소유욕에 몰두하는 정도가 강할수록 상대적으로 더 결핍되고 감소될 뿐이다. 진정한 행복의 시작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로워져서 욕심을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행복은 높은 곳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며 타인에게만 붙어 다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자신의 삶 속에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행복이 절로 굴러 들어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이것은 찾으면 누구에게나 찾아지는 것이다.
인간은 어제보다 진보가 있는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더 진보가 되어 있을 미래를 바라면서 사는 존재이다.
이런 모습이 매일의 삶 속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타인의 행복을 존중히 여겨야 나의 행복도 보장되어진다. 몇몇의 행복이기보다는 모두가 행복해 하는 세상이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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