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興淳 박사
(선문대 교수·국제정치학·본지 논설위원)


9월 11일 미국 테러사건으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충격과 반 테러 전쟁의 소용돌이는 우리의 삶과 세계평화 문제에 대하여 새삼스러운 성찰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른 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이라는 자살테러, 세균테러사건은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으며 지구촌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사실 1990년을 전후로 구 소련을 비롯한 동구유럽의 붕괴가 냉전 종식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탄생시켰을 때, 세계는 그 엄청난 의의에 대하여 환호하였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이 이른 바 세계대전으로서 인류의 근대역사를 영구히 바꾸어 놓았다면, 탈냉전이라는 “소리 없는 혁명”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또 다시 인류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새로운 세계는 과연 어떠한 세계가 될 것인가에 관하여, 당시 세계의 석학들은 몇 가지 혹은 낙관적이고 혹은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우선, 프란시시코 후쿠야마(Fukuyama)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글에서 변증법적 입장에서 인류의 삶은 심심하고 의욕이 상실되고 무미 건조한 세상을 살게 되었다고 진단하였다.


인류미래에 대한 비관, 낙관론 엇갈려


그는 인간이란 끊이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동물이고, 사실 인류역사는 그러한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인한 대결과 갈등의 역사로 보았다. 그러나 냉전, 즉 자유민주주와 공산주의라는 이념대결이 전자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인류에게 있어서 이념적 투쟁이라는 오랜 역사는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제 더 이상의 추구할 목표와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으니, 세계는 그 역사의 종말에서 그 삶의 의미를 잃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소극적인 입장보다 더욱 비관적인 견해를 밝힌 것은 하바드 대학의 사뮤멜 헌팅톤(Huntington)이었다.
그는 이제 이념의 갈등을 대신하여 서로 다른 [문명간의 충돌]이 세계의 주요현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세계에는 대충 6개정도의 커다란 문명권이 있고, 문화, 역사, 종교, 생활양식, 가치관등 문명의 차이가 인류역사에서 오랜동안 갈등의 원인이 되었는데, 21세기에도 이것이 다시 표면화 될 것임을 지적하였다.
1990년대초 구 유고연방에서의 보스니아 전쟁을 비롯한 각종 지역분쟁이 그 전형적인 예로서 지적되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예일대학의 폴 케네디 (Kennedy) 교수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국제사회의 갈등양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진단을 하였다. 그에 의하면, 세계는 문명간의 충돌이 아니라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반 미국의 갈등구도로 나뉘어 질 것이라고 보았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으로 특징지어지는 “세계화”라는 전지구적 추세는 사실상 미국적이념과 가치, 그리고 세계전략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화의 폐해, 가령 국내 계층간의 그리고 국가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됨으로써, 미국적 이념과 문화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이러한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견해에 대하여, 정반대로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인 전망을 한 사람은 미래학자 알빈 토플러 (Toffler)였다. 그는 이른 바 [제3의 물결]로 일컬어지는 정보혁명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새로운 생산과 생활양식을 갖추게 될 것임을 일찍이 예견한 바 있다. 그러한 정보혁명이 실제로 전개되고 있는 현대 세계에서 과학기술의 발달, 인터넷 보급으로 인한 정보의 공유와 확산은 전지구촌에 걸쳐 동일한 가치, 문화, 생활양식을 전파하는데 이바지 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창이다.


진정한 세계평화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따라서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국가간 분쟁이나, 이념적 갈등은 점차 사라질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보다 풍요롭고 밝은 세계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나아가서 이제 정보혁명의 시대에 이어 또 다른 혁신적 물결, 즉 바이오 (bio) 산업, 우주정복산업 같은 [제4의 물결]시대가 곧 다가올 것임을 전망하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4개의 시나리오가 모두 어느 정도로 현재의 세계상태를 이해, 설명하는 타당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전세계는 한편으로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테러의 물결과 전지구적인 우려와 불안으로 세계평화전망과 미래에 대하여 매우 비관적인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만간 전쟁의 공포가 진정되고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서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사실, 지난 10여 년간 탈냉전시대의 급격한 변화속에 전세계에 걸쳐 인류공동의 관심과 많은 난제들을 함께 해소해 나가야하는데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편협한 국가주의, 교만한 대외 정책 가운데서 세계적 지도력이 부재하였다. 이제 테러사건을 계기로 인류의 진정한 풍요와 협력, 그리고 세계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와 이념, 정책을 이끌어 내는 지혜와 지도력이 보다 시급해졌음을 실감하고 있다.
이번 테러사건으로 세계질서를 다시 보고 인류평화를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으면 모두가 함께 멸망할 수 있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는 다면 참으로 전화위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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