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이 ‘내 생애 최고 전성기’

건강한 노년을 위해 취미를 갖는 것이 좋다. 취미 활동은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노년층에게 이롭다. 우울증 완화와 예방에 도움을 주고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평산방갤러리(사우동 봉화로 48)에서 개인전 ‘일흔번의 꽃을 피우다’展을 여는 한을순(70) 씨. 자신의 심장박동을 따라 오랫동안 그려오던 꿈을 이뤘다. ‘늦었다’ 생각하고 포기하기엔 그 꿈이 너무 간절했을까.

‘억척이 할머니’ 다시 붓을 들다

한 씨의 고향은 대곶 상마리다. 대곶초등학교와 양곡중학교를 나왔다. 그림을 잘 그렸다. 중고등학교 땐 전국실기대회를 거의 도맡아 출전할 정도로 재주가 있었다. 당연히 미대 진학이 꿈이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포기’를 강요받아야 했던 어린 시절. 지금과 많이 다른 대곶은 당시 까마득한 시골이었다. 새마을 지도자교육을 받았고 4H에서 농사를 배웠다. 농기계 끌고 밭을 갈며 집안의 기대대로 농사 꿈나무(?)로 성장했다. 시집가기 전까지 대곶에서 ‘처녀농부’로 불렸다. 24살에 서울 방앗간집에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장애가 생기고 한 씨의 말대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만큼” 어려웠다. 양품점을 열고 소일거리로 상자붙이기, 봉투접기, 쑤세미뜨기 등 “안해본 일이 없었다” 할 정도로 ‘억척이’가 됐다. 남자아이 둘이 초등학교 1, 2학년에 각각 진학할 때쯤 도배를 배웠다. 지금까지 35년째 도배일을 하고 있으니 평생직업이 된 셈이다. 한 씨는 “지금도 방 2개 짜리 정도는 혼자서 거뜬하다”며 건강을 과시했다. 15년 전 큰아들 결혼시킬 무렵 다시 김포로 이사 왔다. 아들 둘 출가시키고 여유가 생기며 가슴 속 묻어뒀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62세, 다시 붓을 들었다.

 

고희(古稀)연에 맞은 첫 개인전

농익은 열정이 무섭다. 한 씨는 “그림을 그릴 땐 밤을 꼬박 새워도 힘들지 않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 완성될 때 성취감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내 얼굴 보고 젊어졌다 한다”고 했다. 

먹의 농담과 필력의 변화로 표현하는 수묵화 중심 그림교습소인 평산방을 만나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걸었다. 제25회 통일문화제 우수상을 수상했고, 수원대학교 평생학습 미술전문인과정을 수료하며 미대 진학이라는 옛 꿈도 이뤘다. 호국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경기미술대전 등에서 입선, 우수상 등을 받으며 작가로 입지를 다졌다. 이번 첫 개인전에 45점의 작품을 준비했다. ‘청(靑)림(林)’이라는 자신의 호처럼 주로 푸른 숲을 화폭에 담았다.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안정감, 한 씨는 그렇게 그림에 자기 자신을 남겼다.

“지금이 내 생애 최고 전성기”라는 한 씨는 “대학교도 밟아보고 이루고 싶은 모든 꿈을 이뤘다. 그동안 신랑이 학비(회비)를 대줬고 전시회는 아들들이 고희(古稀)연 선물로 준비하게 됐다. 나는 손주 영우에게 (도배일 하는)노가다 할머니가 아니라 화가 할머니”라고 자랑이다. 한 씨는 “역량을 키워준 평산방 신흥균 화백의 도움과 80여 회원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평산방 신흥균 대표는 양곡중학교 2년 후배다. 한 씨는 한 장, 한 장 손수 그린 손수건을 이번 개인전 답례품으로 준비했다.

나이 들수록 더 움직여라

‘70’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활력적이다. “도배일을 하려면 치수를 재며 머리를 써야 하고, 목운동도 되고 팔운동도 된다. 지금도 아픈 데 하나 없이 건강하다”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졌다. 생업인 도배 일 외에도 5백평의 농사를 짓고 있다. 얼마 전엔 필리핀에 선교활동까지 다녀왔고 틈틈이 쑤세미를 떠 지인들에게 나눔을 하고 있다. 한 씨는 타고난 건강도 있지만 매사에 긍정적이고 활달한 성격을 자신의 에너지 근원으로 꼽았다. 한 씨는 “시간이 많고 일이 없으면 과거에 연연하고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계발에 힘써야 한다”며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이들이 신체 활동을 줄이기 쉽지만, 이 시기에 오히려 활발한 신체 활동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뭔가에 몰입하면 잡념도 사라지고 자신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며 노년의 생활에 취미 활동을 보탤 것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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