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 한사랑 카페매니져
▲최은혜 한사랑 카페매니져

동쪽으로 쭉 뻗은 출근길을 가다 보면 저 앞으로 기러기들이 줄지어 한강으로 간다. 아침 먹으러 가나 보다. 일을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서쪽 집으로 들어오다 보면 그들도 하루를 잘 보냈는지 ‘끼룩끼룩’ 거리며 산으로 향한다. 이들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하늘이 높아지는 늦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저 북쪽 시베리아에 잘 있다가 찬 서리 맞으며 추운 겨울을 찾아, 먹이가 많은 한강을 찾아, 쉴 곳이 있는 작은 산을 찾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온다.

 아이와 산책하다가 하늘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어김없이 그들은 왔고,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우리 또 왔다고, 반갑다고 인사하는 듯하다. 그러면 우리도 잘 지냈었다고 별일 없었다고, 잘 쉬다 가라고 손 흔들며 화답해 준다. 기러기 덕분에 하늘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아이와 나는 가끔 저 무리와는 잠깐 떨어져 뒤따라가는 아이들에게 어서 가라고, 함께 하라고 응원의 소리와 손짓을 한다. 

 김포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가 매년 겨울마다 기러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줄지어 나란히 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보통 맨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대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맨 앞에서 난다는 것은 공기저항으로 인해 체력 소모가 심해서 혼자서는 계속 맨 앞을 날 수가 없다. 단체로 비행할 때는 우연히 가장 먼저 날게 된 기러기를 꼭짓점으로 해서 V자나 W자의 형태로 날아간다고 한다. 맨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만드는 기류를 뒤의 기러기가 탈 수 있게 되어 에너지를 아끼고 오래 날 수 있게 된다. 

 나는 기러기를 볼 때마다 고은 시인의 ‘선제리 아낙네들’이 생각난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 하고 남이 아니다.’ 빈 배 요기도 못 하고 시오릿길 장에 갔다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말소리와 밤기러기 소리가 비슷하다고 한다. 그 먼 길을 오고 가는 고된 길을 혼자가 아니라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의좋다고 한다. 

 그 춥고 먼 북쪽 땅을 향해 얼마나 많은 밤을 쉴 새 없이 날개를 저었을까. 아름다운 선을 이루는 도열을 유지하며 어떤 약속으로, 어떤 신뢰로 서로를 의지하고 정답게 그 긴 시간을 함께하였을까. 뒤처지는 친구 다독이며, 칭얼대는 친구 달래 가며, 함께 가자고, 가야 한다고 얼마나 많은 정다움이 그 시간들을 채웠을까. 봄이다. 다시 떠나온 북쪽으로 3500km를 또 정답게 날아가겠지. 혼자서는 다다를 수 없다. 혼자서는 행복하지도 않다. 설정이라도 한 듯 오차 없이 도착한 그곳에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 기쁨을 나눌 수 없다. 김포에 기러기 소리가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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