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금숙
시향 시낭송아카데미 대표

독일계 프랑스 의사이자 사상가, 신학자이자 선교사로 활동하며, 적도 아프리카에 병원을 개설하여 인류에 인간애를 실천하여 제2의 예수(?)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남긴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생물학적 색맹을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십 대에 이 글귀를 어디서 보았을 때는, “아~ 고집 세게 살지 말라는 말이구나.” 하고 그냥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이순(耳順)을 살고 보니 어느 날 이 말이 새롭게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왔다.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되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 비슷한 의미의 말들이 우리 옛 말에도 많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던가, 귀먹고 삼년, 눈 감고 삼년, 입 닫고 삼년, 고달픈 시집살이의 지표 같았던 석 삼년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 진리는 대동소이할 것이다. 나이 들수록 점점 반성할 일들이 많아지고,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워진다. 내 생각에 얽매여 내가 옳다고 우겼던 일들, 내 뜻과 다르다고 외면했던 일, 물론 외면하는 것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내 마음에 거슬리는 상황은 피하고 싶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용감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소심해지고 나약해지는 것 같아 때론 슬픈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이 말 속의 의미를 생각하면, 너무 시시비비가리며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지 말고 둥글게 살아가라는 깊은 뜻일 것이다. 모난 돌은 굴러야 둥근 조약돌 되듯이 지난날의 상처가 있어야 지금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짧은 문장을 보면서, 나를 반성했다, 질책했다를 반복하면서 위안을 받는 것도, 아직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뜻일 게다.

 

 

<구성 :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고문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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