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김포, 김포형 도시재생의 길을 찾다_5 사례에서 배우다② 주민협의체의 적극성

도시가 성장하면 반드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낡은 도시를 모두 없애고 다시 짓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느리지만 생활 터전과 공동체를 유지하며 활력 잃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재생’은 힘들지만 의미 있다. 도시재생 초기단계인 김포.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편집자 주>

 

<연재순서>

1. 김포 도시재생사업 현황 진단

2. 도시재생사업, 무엇이 중요한가?

3.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역할을 묻다

4. 사례에서 배우다① 주민 의지의 중요성

5. 사례에서 배우다② 주민협의체의 적극성

6. 사례에서 배우다③ 유관기관과의 협력

7. 사례에서 배우다④ 거버넌스의 힘

8. 사례에서 배우다⑤ 아이디어가 다한다

9. 사례에서 배우다⑥ 서울가꿈주택 집수리 지원사업

10. 사례에서 배우다⑦ 상권이 살아야 성공

11. 사례에서 배우다⑧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12. 주민, 행정, 전문가가 말하는 김포 도시재생 방향

 

▲이명규 나주읍성권도시재생주민협의체 회장

 

주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도시재생사업은 사업 전 기획단계부터 주민협의체를 결성하게 된다. 지역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주민들이 지역의 어떤 부분에서 재생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기에 그 욕구와 의지를 사업에 반영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협의체의 존재는 무엇보다 우선하는 필수조건이 된다.

 

지난 2016년부터 시작해 지난해 마무리된 전라남도 나주읍성권도시재생사업은 주민협의체를 통해 주민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며 진정한 주민주도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나주는 ‘전라도’라는 명칭이 ‘나주’에서 한 자를 가져왔을 정도로 예부터 전라도의 대표 도시였다. ‘천년목사(牧使) 고을’이라는 수식어가 말하듯 1,000년 전 마한 문화권의 중심지였던 나주는 고려 왕건 스토리, 고려 현종 몽진, 동학농민운동, 학생독립운동 등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간직한 곳이다. 또한 현재까지 남아 있는 나주읍성, 금성관, 나주관아, 향교 등의 문화재가 살아있는 역사·문화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영산강이 나주시 중앙을 관통하는 지리적 조건 덕분에 나주는 농업산업이 성장했다. 하지만 도시집중화로 인해 농업경제가 붕괴되고 인구감소, 도시 노후화 등의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2014년 나주혁신도시 조성에 따라 원도심은 인구감소가 더 급격해졌다. 이에 나주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나주 원도심의 과거 영광을 재현하고 살아있는 박물관 도시를 조성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표로 도시재생사업에 지원 선정됨으로써 2016년 사업비 100억 원 규모의 근린재생형 사업을 시작했다.

▲고려 왕건과 관련되 스토리를 벽화로 구현했다.

▲골목길 한옥 담장을 정비하는 사업을 전개하며 담장에 조명을 설치했다.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음은 물론 안전까지 확보했다.

 

▲한옥담장 정비사업과 함께 화단을 조성해 골목길을 화사하게 만들었다.  

 

 

‘따따부따인력거투어’ 등 11개 콘텐츠사업

도시재생주민협의체에서 맡아 진행

‘나주읍성 살아있는 박물관도시 만들기’ 도시재생사업은 말 그대로 나주의 역사, 문화자원 활용을 통해 나주읍성권 지역을 박물관 도시로 만드는 도시재생사업이다. 이에 따라 코아센터 건립, 사매기길·향교길 특화가로 조성, 흙돌담길 조성, 한옥형태 지붕정비, 나주천 나들이길 조성, 금성관길 야간경관 정비 등의 물리적 사업과 스토리가 있는 문화체험 등을 발굴하는 11개의 콘텐츠사업을 이어갔다.

 

그런데 박물관마켓, 나주목사코스플레이, 전동인력거운영, 도심캠핑장 등 11개 콘텐츠사업 모두를 나주읍성도시재생주민협의체에서 맡아 진행했다. 이명규 주민협의제 회장은 앞에서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사업을 이끈 장본인이다.

 

“당시 도시재생은 선정 후 활성화계획을 세웠다. 도시재생대학을 4회에 걸쳐 운영해 주민들의 도시재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역량을 강화해 원하는 사업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물리적 환경이 재생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들이 한마음으로 어울리며 사회적 역량을 강화화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콘텐츠사업을 많이 기획하게 됐다.”

 

콘텐츠사업은 일반적으로 용역사에 맡겨 진행하기에 주민은 그저 따라가는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이곳은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주민들이 주민협의체에 들어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활동하니 콘텐츠사업을 굳이 남에게 맡길 필요가 없었다. 결국 이런 적극성이 진정한 ‘풀뿌리 도시재생’의 진수를 보여주게 돼 관계자들로부터 ‘우수하다’는 인정을 받게 됐다.

 

“대부분 행정이나 지원센터에서 전문업체 입찰을 통해 사업을 진행한다. 여기도 처음엔 그렇게 계획했다. 하지만 입찰공고를 내면 결국 광주나 주변 큰 도시의 전문업체가 될 확률이 높으니 사업비가 나주에서 쓰이지 않고 외부로 흘러나가게 된다. 그래서 주민협의체가 하겠다고 나섰다. 대신 현장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사업비 등을 관리하며 협력해 진행했다.”

 

콘텐츠사업을 직접 진행하지만 이해당사자는 사업비를 받을 수 없기에 주민협의체 주민들은 순수하게 봉사로 일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처음엔 200명 정도였던 주민협의체 구성원이 5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 회장은 “무언가 바라고 들어왔던 주민들이 한두 번 하다 안 나오게 된다. 정말 나주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같이 고생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함께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읍성 주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는 인력거 투어 사업. 지역소득 창출로까지 이어졌다.

 

주민협의체는 지난해 ‘문화재야행’ 사업에도 선정돼 축제와 도시재생 컨텐츠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더욱 올릴 수 있었다. 4회까지 진행한 1박2일 ‘도심캠핑장’이 축제 기간에 열려 가족단위 참석률이 높았다. 또한 원도심의 주요 역사 관광지를 투어코스로 개발해 인력거를 타고 돌아볼 수 있게 한 ‘따따부따인력거투어’는 포토월을 설치하고 사용료 만큼 지역상품권을 제공해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60회 운영에 2,900여명이 이용했으며, 1,350여 만 원의 지역 소득을 올렸다.

 

“읍내 나주곰탕집에 1년에 100만 명이 다녀간다. 식사하고 두세 시간 이곳에 머물다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건 콘텐츠사업이라고 판단했다. 그중 인력거사업을 통해 이용료로 받은 1만 원을 다시 1만 원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줌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했다.”

 

나주정미소 ‘난장곡간’ 탈바꿈 지역활성화 구심점...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으로 이어져

나주읍성권도시재생사업에서 청년유입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이루고자 가장 많이 신경 써 진행한 사업은 ‘난장곡간(曲間)’이다. 호남 곡창지대 나주를 대표했으나 1980년대 화재로 방치된 나주정미소를 리모델링해 청년과 주민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정미소의 ‘곳간(庫間)’에서 착안해 음악을 비롯한 문화와 예술을 쌓아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난장곡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방치된 나주정미소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난장곡간’
▲공연이나 회의 장소 등으로 이용되는 난장곡간 내부

 

 

“2019년 말 오픈하면서 광주MBC 문화콘서트를 이곳에서 공연하게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200여 명이 공연을 보러 올 정도로 나주혁신도시와 전남 인근 도시 청년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원도심에 다시 활기가 넘치며 기대감도 높아졌다. 하지만 작년 초 코로나19 상황이 이어지며 방역조치로 50여 명 정도만 관람할 수 있게 되면서 기대했던 만큼의 경제 활성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실망은 접어둬도 좋을 것 같다. 난장곡간은 나주정미소 리모델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주시는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며 나주정미소 1,000여 평 5개 동을 사들여 100억 사업비의 1/4을 주민거점 공간 확보에 활용했다. 사업비 안에서 리모델링을 하다 보니 그중 한 곳인 1동만을 리모델링해 공연장으로 만들었던 것.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이 진행 중인 나주정미소 3동 공간. 250규모의 공연장이 들어선다.

 

“도시재생사업을 마중물사업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업기간에 한 동만 리모델링하고 말았으니 그다음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체부의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 공모에 선정돼 40억 원을 지원받게 됐다. 현 난장곡간은 사업비 때문에 방음공사를 하지 못했다. 더 넓은 공간인 3동을 250석 규모의 방음시설 갖춘 공연장으로 만들고 이곳은 작은 도서관과 어린이 놀이방, 영화관 등 주민공유시설로 전환할 예정이다.”

 

앞으로 2, 4, 5동은 정미소에 대한 역사 아카이브 공간, 예술작품 전시 및 체험관, 로컬푸드직매장, 쌀 가공식품관,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소득 창출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향유공간 제공으로 혁신도시 이주민과 원주민 모두에게 더 나은 정주환경을 안겨 주게 된다. 올 12월까지 사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난장곡간에 자리 잡았던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정리되지 않고 12월까지 지원을 이어간다.

 

주민자치협의회는 지난해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원도심도시재생사업을 이어갈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71명 조합원을 중심으로 난장곡간 등 앞으로 건립되는 공간의 운영과 관리를 위해 자생력을 키우는 중이다. 지난해에 이어 나주시의 지원을 받아 인력거사업, 박물관 마켓 등의 사업도 진행하고 있으며 외부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기획력을 높여가고 있다.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공간 골목청년 
▲창업 청년들이 하나둘 읍성마을로 들어오며 골목길이 환해졌다.

 

 

“청년이 문을 연 가게가 하나둘 생기고 있고 청년창업 길 조성과 한옥 게스트하우스 지원사업이 마무리되면 난장곡간과 함께 청년들이 모여드는 새로운 지역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코로나로 주춤한 상태지만 내년을 생각하면 설레기까지 한다.”

▲이른 아침 꽃길조성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협의체 주민들

 

취재 다음날 가로수길 화단에 꽃을 심는 꽃길사업을 위해 이 회장이 봉사를 부탁하자 이른 아침 주민협의체 위원 20여 명이 바로 나올 만큼 협력과 지역사랑으로 한마음인 이들을 목격하고 보니 그동안의 도시재생사업 성과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년 이 회장의 기대가 현실로 실현되는 건 당연한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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