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차연이라는 말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가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용어이다. 차연은 우리의 문화나 용어가 뚜렷한 공통성을 갖는 것 같으나 그것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과 공간을 넓혀 차이를 갖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개념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가 우리 사회에 도입될 때 그것은 계산하는 도구였다. 주판이나 종이를 사용한 계산 도구와 구별하기 위해 그것을 전자계산기라고 불렀다. 아직도 이 이름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달라졌다. 물론 컴퓨터 자체의 용도도 무한히 확장되었다.

자크 데리다의 ‘차연 differance’은 ‘차이 difference’의 어미 ‘-ence’를 ‘-ance’로 바꾸어 사용한, 기존의 인식론을 뒤흔드는 말들을 가리키는 독특한 신조어이다. 이 말에는 ‘다르다 differ’라는 의미와 ‘연기하다 혹은 지연시키다 defer’라는 의미를 모두 가진 ‘differer’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차연은 변별성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연기나 지연이라는 뜻도 적극적으로 포섭한다.

데리다는 이 두 의미를 동시에 모두 작동시키며, 어떤 순간에도 한쪽만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세계가 궁극적으로 결정되어 있거나 확정할 수 있는 고정된 무엇이라는 사실을 거부한다. 세계란 언어의 사용을 통해 얼마든지 달리 해석되는 여지를 가진 텍스트라는 데리다의 주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왜 이런 주장으로 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가? 차연이란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는가? 실질적인 예를 들어 보자. 사회에는 온갖 갈등들이 부단히 일어난다. 그런데 갈등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절대시하는 데서 온다. 그러나 만약 차이라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의 이해에서 빚어지는 시간과 공간 때문에 생기는 가변적인 기제라는 것을 안다면, 이런 갈등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데리다의 차연을 논하는 오늘의 연유이다.

차연이 내포하고 있는 두 가지 의미의 작동원리는 사전의 단어 정의로 설명할 수 있다. 즉, 한 단어는 다른 단어에 의해 차이에 따라 정의되고, 그러한 정의는 의미의 가능성에 한계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의미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어는 그와 다른 단어에 의해서만 정의되는데, 그 다른 단어 역시 또 그와 다른 단어로 이루어진 정의를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순환은 끝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개 dog의 사전적 정의를 보자. ‘갯과에 딸린 가축의 하나’. 여기서 개를 알기 위해서는 갯과와 가축을 또 찾아야 한다.

갯과와 가축의 인식은 개를 알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든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 때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 체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데리다는 ‘시간화’라고 부른다. 시간화란 지연, 연기, 우회를 의미한다. ‘개’라는 지시어를 사용할 때 그것은 실제 개가 아닌 개에 대한 내적 관념을 가리킨다. 진짜 개는 실제로 나타나지 않는다. 없는 개를 있게 하는 것은 기호 작용이다. 이때 기호는 시간상으로 지연된다.

인식은 공간화도 요청한다. 공간화는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면서 나타난다. 분필을 분필로 인식하려면 우리는 칠판으로부터 분필을 떼어놓아야 한다. 즉 분필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분필을 떼어놓아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간화는 분필과 다른 모든 것들 사이에 시간적 연기를 개입시키는 것과 결국은 똑같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하나에 대한 두 개의 표현이다. 한 마디로, 시간의 공간화는 공간의 시간화이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드러나지 않지만 많은 차이와 전제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서로 얽혀 있어서 그것을 붙잡는 한 개인은 매우 특수한 한 사례를 붙잡은 것 같으나, 사실은 그 사례로 연결된 수많은 사태와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지칭하는 단어나 개념이 차연을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롭다. 차연은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이 늘 확장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기표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인식은 시간과 공간상 타인과 필연적으로 연루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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