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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 20년 근속 식구들과의 약속으로 버텼습니다”강소중소기업을 가다 - ㈜한강자동차 장호만 대표

직원 90% 20년 근속자.. 존중으로 다져진 신뢰 사내 문화 형성

지난해 손실 3억 이상, 퇴사 등 어려움도.. 올해 다시 뭉칠 기대

40여년 살아온 김포, 내 모든 것 있는 소중한 터전

 

코로나19 위기의 순간도 20여년간 한솥밥 먹은 직원들과의 약속을 동력으로 이겨낸 기업인이 있다.

35년 정비업을 이어온 ㈜한강자동차의 장호만 대표는 2020년만큼 어려운 해는 없었지만, 초창기부터 함께 해 왔던 직원들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해병대의 정신으로 인생의 굴곡을 헤쳐나간 ㈜한강자동차의 장호만 대표를 만나봤다.

 

Q. 코로나19로 많은 기업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한강자동차의 지난해와 올해 상황은 어떠한가.

A. 35년 정비업을 이어가며 28년간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2020년만큼 어려운 해는 없었다. 직장생활 7년에 과장, 공장장, 상무 등을 거치며 여러 보직에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위기를 겪어오며 성장해 왔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길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왔지만, 지난해는 앞뒤 막힌 동굴과도 같았다. 우리 회사는 직원의 90%가 20년 근속자다. 내 가족같은 이들인데, 회사손해가 3억 이상 나면서 상황이 너무 어려워지자 함께 한 직원들이 스스로 연봉을 조정하는 등 방법을 제시하고 나섰다. 그렇게 어렵게 버텼지만 결국 2명의 직원들이 퇴사하게 됐다. 피눈물을 흘리며 그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장과 식당 등 총 48억원의 자산을 팔아 정리했다. 20억원이 남아야 하는데 퇴직금 정산해 주고 이것 저것 정리하고 나니 없다. 그래도 공장은 살아있다. 직원들 봉급 몇 푼 아껴서 공장 이득볼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제 퇴사한 2명의 직원들을 다시 데려올 예정이다. 상반기 안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쁜 마음이다.

 

Q. 직원의 90%가 20년 근속자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비결은 무엇인가.

A. 한강자동차가 지역에서 자리잡게 된 것은 직원 역량과 업무 시스템 마련이 주요 요소라 생각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공장장, 각 부 팀장들, 경리 직원들까지 대부분 20여년간 생사고락을 함께 한 이들이다. 그만큼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는 인간적 관계다. 그렇다고 해서 업무적으로 말을 놓거나 하지는 않는다. 존중으로 다져진 신뢰가 우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공장 업무가 상향식인데 반해, 우리 회사는 반대다. 현장이 우선이고, 사무국은 현장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투명한 운영도 큰 특징이다. 매출을 전부 공개한다.

투명한 운영 속에 현장의 실무적 권한이 마련되어 있는 부분이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하고, 다른 곳에 비해 페이가 높은 부분, 주말 수당이 책정되어 있는 부분도 강점이라 본다.

 

Q. 오랫동안 정비업을 하셨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A. 전국 모임인 한국자동차정비협회 기술연구소장을 역임했는데, 당시 불합리했던 자동차정비업계 수가 조정에 있어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당시 국내는 선진국에 비해 정비수가가 현저히 낮았는데, 미국, 일본, 중국 등의 평균 수가 데이터를 정리해 각 지역에 배포하고, 단계별 상승 협의를 이끌어내는데 주요 역할을 했다.

전국자동차정비협회에는 700여곳의 1~2급 공장이 소속되어 있다. 경기도에만 1500곳이고 김포에만 70곳이었다. 당시 시위 책임자가 되어 휴가를 반납하고 시위에 앞장섰다. 관광버스만 1천대 가량 동원되었고, 1만 5천명이 모여 시위를 했다. 삭발도 감행하며 조정에 나선 결과, 정비수가 일부 조정됐다. 시위책임자였던만큼 책임을 진 부분도 있었지만, 공공의 이익에 앞장섰던 경험으로 뜨겁게 남아 있다.

 

Q. 김포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

A. 김포에 자리잡은지 40년이다. 사업 전에 해병대에서 군인생활을 6년 반 가량 했는데, 해병 1385부대 출신이다. 김포에서 중사 제대하고, 아내도 만났고, 사업도 시작했다. 제대 후에 현대자동차 공채로 들어가 직장생활하다가 김포양촌동아탑에 스카웃되어 공장장이 됐다. 동아탑 이후에는 초원지리 평화탑에 공장장으로 스카웃되었고, 이후 독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Q. 김포 지역 내 활동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A. 처음에 김포에 왔을 때 인구수가 4만 6천이었다. 김포로타리총괄회장, 김포해병전우회장, 영남향우회장 등을 맡으며 봉사단체에서 24년간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해 공장이 어려워지면서 활동을 멈췄다. 어떻게든 김포에 봉사하고픈 마음은 여전히 살아있다.

김주현 기자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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