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4

박영준 

김포중앙교회 원로목사

소년시절 나의 꿈은 훌륭한 농촌지도자가 되어 가난한 농촌을 잘 살게 만들고, 내가 섬기는 교회의 훌륭한 장로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귀한 일꾼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처음 구체적으로 활동한 것이 4-H구락부 조직이었다. 4-H구락부는 Head(머리), Heart(마음), Hand(손), Health(건강)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일종의 실천적 사회교육운동이다. 창의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행동을 통해 청소년을 미래의 주역으로 키우고 농어촌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네 잎 클로버 문양에 지(知), 덕(德), 노(勞), 체(體)를 표상으로 하는 4-H클럽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미군정(美軍政) 때부터였다.

당시 김포농촌지도소 통진지소는 현 통진읍 인삼조합 위치에 있었는데 지도소에 내 아버지의 이종 사촌인 김의철 씨가 지도사로 있었다. 이 분이 나를 지도해주어 친구들 몇몇의 동의를 얻어 준비를 했고 의식 있으신 동네 어른 몇몇 분의 지도를 받아 구락부를 조직하게 되었다. 구락부 창립식은 초등학교 교실 하나를 빌려 농촌지도소장, 김포경찰서 통진지서장,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등을 외빈으로 초청하고, 동리 어른 등 100여 명이 모여 성대하게 치렀다. 명칭은 ‘대서명 4-H구락부’라고 정했다. 그리고 동네 입구에 콘크리트로 탑을 만들어 세우기도 했다.

나는 그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수년간 우리 대서명 4-H구락부를 이끌어갔다. 4-H구락부에서는 회의로 모일 때마다 4-H 서약으로 맹세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4-H 서약>

나는 4-H회와 사회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나의 머리는 더욱 명석하게 생각하며, 나의 마음은 더욱 크게 충성하며, 나의 손은 더욱 위대하게 봉사하며, 나의 건강은 더욱 좋은 생활을 하기로 맹세함.

그 당시 농촌지도소 지도사의 지도를 받으며 활동을 했는데 이제는 농사를 해도 과학적으로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냥 우리 부모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답습하는 그런 농사가 아니라 공부하며 연구하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농사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제 새롭게 배워야 하는데 많은 농업 전문가들이 연구하며 개발해 온 것들을 토대로 해서 스스로 경험을 쌓아가며 농사를 지으라고 했다.

나는 4-H구락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故 김용기 박사를 존경하게 되었다. 김용기 박사는 암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5년부터 가나안농군학교를 시작해 일제에 저항하며 개척의 역사를 이루어 갔으며, 힘 있는 민족, 잘사는 나라를 소망하며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괭이를’ 이라는 신념으로 가나안농장을 시작으로 개척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실의와 게으름과 거짓과 허세에 빠져 있던 당시 민중들의 정신과 습성을 바로 잡기 위해 가나안농장을 개척하여 삶의 질을 물질적으로 향상시켜 나가는 것과 함께 잠자고 병든 우리 민족의 혼과 심령을 깨우치기 위한 운동에 힘쓰셨다. 이러한 운동은 후에 ‘복민사상’(福民思想)의 기초가 되었으며, 가나안농군학교가 있게 한 힘이 되었다.

이 복민사상은 김용기 박사의 황무지 개척과 농민운동, 독립운동, 정신교육 활동에 기초가 되었고 우리 민족근대사 뿐만 아니라 기독교 사상사적인 면에서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복민(福民)’, 즉 하나님의 복 받은 백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이 단어와 연관시켜서 복민사상 또는 복민주의라고 칭했는데 그 의미는 문자 그대로 복음에 따라서 사는 ‘복 받은, 복 받고 있는, 복 받을’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말하는 사상이다.

조국이 해방된 이후에도 메마른 황무지를 개척하고 민중의 의식을 계몽하는 일을 해오던 김용기 박사는 체계적인 교육훈련의 중요성을 깨닫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개척자적 정신을 심어주고자 1962년 경기도 광주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후 더욱 많은 교육의 확대를 위해 강원도 원주에 지금의 제2가나안농군학교도 설립했다.

새마을운동의 성공에는 가나안농군학교와 김용기 박사의 땀과 노력이 있었으며 지금의 가나안농군학교 역시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자산을 계승하고 역사와 시대의 교훈과 설립자인 김용기 박사가 남긴 복민사상을 통해 오늘날 발달된 과학문명 속에 감추어진 역기능인 정신문화의 빈곤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청소년 시절에 4-H구락부 활동을 하며 김용기 박사님의 정신을 터득하면서 꿈을 키워나갔던 일은 너무나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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