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오늘날 대한민국은 지리멸렬하고, 불안하고, 소란하고, 썰렁하고, 어둡기 짝이 없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띄어 앉은 거리 이상으로 이웃한 사람들이 생경하다. 

왜 이렇게 되었나를 생각하다가 우연히 2017년 5월 10일자 문 대통령 취임사를 읽게 되었다. 거기에는 대통령의 야심찬 비전과 약속이 적혀 있었다. ‘지금의 나라(이게)가 나라인가. 

앞으로 내가 운영하는 대한민국은 온 국민에게 차별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나라로 만들겠다.’ 4년이 지난 지금, 현실과 이 약속은 정확하게 모순되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모순을 안타까워한다. 더러는 아니라고 항변하겠지만, 현상과는 전혀 동떨어진 오해일 뿐이다. 

이를 두고 정부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정권을 매도하고, 권력자들은 심지어 야당을 탓한다. 이유야 어떻든 현재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대한민국을 경험하고 있다. 어느 측면에서도 우리 삶은 기회와 과정 그리고 결과에 있어서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를 갖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사건마다 너무나도 다른 인식집단으로 분열되어 다투는 일이 일상화한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실에 대해 평등과 공정 및 정의 개념이 전혀 다르게 작동되는 혼돈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안목, 세계관, 플랫폼, 입장 등의 이름으로 모든 사태를 편의적으로 보는 포스트모던의 인식체계가 우리를 혼돈으로 몰아, 엄청난 사회의 갈등을 빚고 우리 삶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이런 비생산적 무정부 상태는 결국 우리의 터전인 국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나라는 아니지 않은가. 새해발상의 전환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우리는 학교 교육을 통해 수학을 배운다.

셈법부터 시작하여 상당한 수준의 수리법칙을 학창에서 배운다. 수학은 우리의 눈을 틔워 온 우주가 수리로 지탱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수리를 통해 배우는 안목은 ‘모든 사물은 한 가지로 꿰어져 있다.’는 사실, 전문 용어로 <자연의 제일성(齊一性)>이다. 

보편성이라고도 부르는 이 특징은 어떤 사물의 공통성을 꺼내어 묶는 역할을 한다. 당근과 무와 고구마가 전혀 다른 작물이지만 ‘뿌리채소’라는 속성으로 묶을 때 한 통속이 되며, 심지어 사람과 들풀까지도 이들과 숫자를 같이 매길 때 같은 부류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학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이 서로 같이 나누는 공통성을 발견하여 서로 꿰어내는 법칙을 익히게 된다. 정치적 대화와 주장도 이와 같은 보편성을 확보하는 원칙을 찾을 때 사람들은 너나없이 하나가 될 수 있다. 뿐더러 우리는 자연, 물상, 기술이라는 다양한 과목을 통해 과학의 법칙을 익힌다.

우리 삶은 보편적 원칙이나 틀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틀 속에 내용을 집어넣어야 객관성이 확보된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듣고 맛보는 대상들이 내용이 된다. ‘맛있는 식사’는 레시피 한 장으로 덜컥 나오지 않는다. 그 속에 있는 재료를 장만하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평등과 공정 및 정의는 고심하여 펼치는 세밀한 전문 정책과 그것의 시행을 통해 체험되면서 실현된다. 내용 없는 이념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멋진 정책이나식사는 전문적인 경험을 다양하게 펼칠 수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적실하게 수용할 때 현실적으로 마련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과학과목에서 훈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어로 대표되는 언어의 배움이다. 우리는 골치 아픈 국어, 영어 혹은 제2외국어 시간을 기억한다. 어쩌면 아직도 자녀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말 같은 것은 배워봐야 소용이 없다는 교훈을 아이들에게 툭툭 던지는 부모들이 있을지 모른다.

생각해보라. 사람의 품격이나 됨됨이를 뭐로 평가하는지. 최근 구설수에 오르는 장차관의 언행이 언어문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말을 함부로 하거나, 같은 말을 다르게 쓰는 경우가 문제를 부른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말의 순수한 사용은 더 높이 평가받는다. 

한마디로, 현재 사회의 혼란과 불안은 수학, 과학,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때 수그러들고 없어진다. 새해에는 수학, 과학, 국어의 사용을 재고하는 근본적인 자세를 새롭게 함으로써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에 희망을 불어넣자. 이들 과목을 하릴없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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