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박수영

‘책찌짝찌’ 독서모임 회원

부당한 말을 하는 선생님에게 할 말은 하는 전학생 유미와 반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존재감 제로 재준은 단짝이 된다. 유미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 재준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어느 날 재준의 엄마가 유미를 찾아와 재준의 일기장을 건네준다. 일기의 첫 장 첫 줄을 읽고 너무 놀란 엄마는 더 이상 일기를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재준은 가끔 시체놀이를 하며 죽은 듯이 있으며 생각하는 것을 즐겼다. 죽었다 생각하고 보니 쏟아지는 햇살도, 두 귀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도 새삼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기는 짝사랑하던 친구에 대한 마음, 재준을 하등하게 대하던 친구에 대한 미움, 강압적인 부모에 대한 답답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등의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유미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재준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스러운 감정을 재준의 일기를 읽으며 대화하듯 친구를 떠나보낸다.

만약 어느 날 내가 정말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내가 죽은 모습을 볼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 아쉬움, 미안함, 고마움도 크겠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많이 남을 듯하다. ‘내가 조금 더 양보할걸’, ‘내가 조금 더 참을걸’, ‘내가 조금 더 사랑할걸’. 거리를 두어야 보이는 것들은 죽어서만 알 수 있을까?

나에게도 중학교 2학년 때 아주 친하게 지내던 단짝이 있었다. 일명 ‘노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욕도 잘하고 행동도 거침없는 친구였다. 그 친구에서서 25년 만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나야.’라는 한 마디에 그 친구의 얼굴이 바로 떠올랐다.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내 질문에 그 친구는 “나 어린이집 원장이야. 10년 넘었어.”한다. “네가? 어린이집을? 한다고?” 어린이집 원장이라서가 아니다. 욕쟁이와 어린이가 매치되지 않아서였다. 너무 평범해서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스릴 있었던 때, 가장 재미있었던 한때를 보낸 내 친구는 계속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니 잠시 중2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아빠가 손수 지어주신 새 집에서 동생, 엄마와 함께 거실을 뛰어다니던 그때. 공부하란 잔소리 없었던 부모님. 늘 맛있는 반찬을 많이 해주시던 할머니. 지금 생각하면 나를 둘러싼 환경은 너무나도 완벽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완벽하지 않았다. 이유도 없이 힘들었고 늘 감정이 뒤죽박죽이며 시시때때로 실쭉샐쭉했고 여기저기 가시가 돋아나 있었다. 그때 초코빵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 바로 친구였다. 그랬구나. 그 나이엔 그런 감정이 평범한 거였구나.

이 책은 방황도 하고 고뇌도 하고 순간순간을 즐거워하며 보냈던 나의 중학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작년 한 해 코로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두기는 이미 충분히 했다. 어른들은 힘든 일을 받아들일 때 “‘나 죽었다’ 생각하고 해봐라” 하신다. 죽었다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는 말일 것이다. 올해가 소띠해니 ‘나 죽었소’를 모토로 나 자신과 거리두기를 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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