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목사의 자전적 에세이>

박영준 

김포중앙교회 원로목사

초등학교 1학년 때 6.25 한국동란을 만나 피난시절을 경험하고, 전쟁 중이던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새 학년 첫 시간에 새로 부임하신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들어오셨다. 지금 생각하기에 한 50세 정도 되신 것 같아 보였다. 낡고 허름한 양복을 입고 교실에 들어오셔서 칠판에 큰 글씨로 ‘김영익’이라고 당신의 이름을 쓰셨다. 실은 성함을 기억하지 못했었는데 내가 회갑 되던 해, 시간을 내어 모교에 가서 확인하고 알게 된 존함이다.

김영익 선생님은 양곡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시다가 우리학교 교감선생님으로 부임해 오셨다가 일 년 후에 다시 양곡초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전근해 가셨다. 그때는 전쟁 당시였기 때문에 교사가 부족해서였는지 교감선생님도 반을 맡으셨던 것 같다. 그런데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 우리에게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칠십 년이 다 된 지금도 내 귓가에 조용하게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중국 한나라 유흠이 짓고 진나라 갈홍이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서경잡기>라는 저서에 나오는 글이다. 가장 강한 사람의 이유는 언제나 ‘최선’이라는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힘이 장사였고, 천성이 쾌활하여 동네 꼬마들을 거느리고 산야를 달리며 사냥하기를 즐겼다는 한나라의 한 장수가 대단한 명궁이어서 그의 화살이 날아간 곳에는 어김없이 새나 짐승들이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산중에서 혼자 사냥을 하다가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밤새들이 여기저기서 우는 가운데 그는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풀숲에서 거대한 호랑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놀라 뛰는 가슴을 진정하고 급히 화살을 집어 들었다. 호랑이가 너무나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이 화살이 빗나가면 그는 영락없이 호랑이 밥이 되고 말 처지였다.

장수는 몸의 신경을 곧추세우고 호랑이를 향하여 활시위를 당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호랑이 등에 분명히 화살이 꽂혔는데도 호랑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다가 장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주 조심스럽게 그 호랑이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 형상을 한 큰 바위가 아닌가. 그가 쏜 화살은 바위 깊숙이 박혀 있었다.

기이한 생각에 그는 활을 쏘았던 자리로 가서 다시 그 바위를 향하여 화살을 쏴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화살이 박히기는커녕 화살촉이 돌에 맞아 튕겨 나가고 마는 것이다, 몇 번을 쏴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이미 박혔던 화살을 뽑으려니 화살대가 부러지고 말았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상대가 호랑이라고 생각했을 때 날린 화살과 호랑이를 닮은 바위라고 생각했을 때 날린 화살이, 모양은 같지만 그 날린 사람의 뜻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교훈의 말씀을 해주셨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쇠붙이나 돌덩이라도 온 정성을 다하면 뚫을 수 있는 법이다. 너희들이 온 정성을 다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전쟁시대에 환경이 어렵더라도 환경을 탓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어린 시절에 들은 이 이야기를 귀한 교훈으로 받았기에 지금도 그 선생님께서 교단에서 하시던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당시 나는 신앙이 없었지만, 장성하면서 지표로 삼고 신앙생활과 목회를 하면서 깊이 깨달은 것은 성경에 사도 바울이 고백한 ‘형제 여러분, 내가 아직 목표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여러분에게 한 가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내가 과거의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힘껏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빌립보서 3장13-14절)’라는 말씀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끄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김영익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겠지만, 그때 주신 그 교훈은 내 일생뿐 아니라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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