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혹을 떼다.

최영찬

소설가

토정 선생은 기분이 상했는지 휭하니 집을 나가버렸고 그날 선생을 볼수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나는 의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양동이도 수술장면을 보겠다고 따라나섰습니다. 수술이 잘되면 혹을 뗄 것이고 실패하면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양동이의 우정에 감격하며 수술준비를 마친의원에게 갔습니다. 미리 귀띔한 대로 의원은 흑요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좋은 흑요석을 구하기 힘들었소.내가 고기를 베어보니 아주 잘 들었소.” 하며 의원은 내 앞에서 흑요석으로 만든 칼로 고기덩이를 토막 내었습니다. 날카로운 칼보다 더 쉽게 잘라집니다.
“혹은 떼 내도 출혈이 문제인데요.” 순식간에 혹을 떼어내도 피가 흐르고 통증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인두로 지지면 통증이 엄청날 것인데 마취제를 가져올 토정 선생은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승세계와 염라대왕을 재담에 넣은 것에 화가 나신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마취제는 어찌 되었나요?” 숯불 속에 집어넣은 인두를 바라보며 의원이 걱정스럽게 묻습니다. 나는 토정 선생이 마취제를 안 가지고 올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냥 하자고 했습니다. 지긋지긋하게 오랫동안 혹을 붙이고 다니며 조롱과 경멸을 받아 왔습니다. 이제 바이바이 할 때가 왔습니다.“그냥 해주십시오.”의원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그냥? 아파서 혼절할지도 모르오.그 충격으로 심장이 멎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판사판 공사판이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니 그냥 수술받겠다고 했습니다. 시뻘겋게 달은 인두를 보았지만 두려움은 없습니다. 이때 문을 열고 토정 선생이 들어왔습니다.
“이보슈, 의원. 마취제를 가져왔소.” 토정 선생의 말에 저는 울컥했습니다. 내가 스승을 화나게 했지만, 스승께서는 저를 버리시지 않은 것입니다.

“마취제는 벌써 구했지만, 인두 자국을 소멸할 연고는 오늘에야 구할 수있었소.”
나는 울 뻔했습니다. 명나라 밀수꾼 에게서 거액의 선금을 주고 기다렸는데 새벽에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토정 선생에게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담담합니다.

“마취제를 쓴다고 하지만 정말 마취가 될 것인지 나도 모른다. 아파도 참아야 한다.”
약을 입에 털어놓고 사발 안의 냉수를 들이켜는 내게 말씀하신 겁니다. 선생은 향시계에 불을 붙여 시간을 쟀습니다. 반 시각이 지나자 토정 선생은 얼른 손을 뻗어 내 뺨을 꼬집었지만, 아픈 감각이 없습니다. 마취가 된 것이지요. 의원은 혹을 붙잡고 흑요석 칼로 그었습니다.

아, 이게 웬일입니까. 두터운 소고기도 단숨에 토막 냈는데 잘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십 년을 내 얼굴에 매달린 혹은 미련이 있는지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당황한 의원의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 번, 두 번 결국 열 번을 긋고서야 혹은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인두, 인두.” 토정 선생이 숯불에서 빼낸 인두는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의원은 인두를 받아들고 피가 흐르는 얼굴을 지졌습니다. 연기와 함께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했지만, 마취제 덕분에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토정 선생이 미리 준비한 연고를 흐물흐물해진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끔찍하게 변했을 내 얼굴보다 늘어진 소불알처럼 땅바닥에 놓인 혹을 무심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연고를 꼼꼼히 바른 토정선생은 부위를 무명천으로 감싸며 말했습니다.
“풍문, 이제 네 질곡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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