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수상 - 수필부문 >

 

타운하우스 사람들

 

                               진 서 우(경기도 김포시)

타운하우스는 바닷가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마을에 있었다. 단층 건물 세 동과 이층 건물 다섯 동이 큰 마당을 가운데 두고 ‘ㄷ’자 형태로 둘러서 있다. 103동의 늙은 부부를 제외하면 도시에서 건너온 부부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106동 2층에 살았다. 청명한 날이면 창밖으로 한라산이 곡선으로 흘러내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다는 평화로웠다.

도시에서 우울한 시간을 보내며 위태로웠던 나는, 남편을 설득해서 해가 바뀌자마자 제주로 건너왔다. 일 년 동안 타운하우스에 머물면서 여행을 하며 글을 쓸 계획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상처가 치유될 시간을 갖고 싶었다. 서울 생활에 익숙했던 터라 섬으로 건너올 때 유토피아를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공동체 같은 이웃사촌은 아니더라도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될 줄 알았다. 타운하우스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이 큰 산맥을 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미처 몰랐던 것이다.

햇살 좋은 날이면 104동에 사는 ‘해피’와 ‘데이’가 마당을 뛰어다녔다. 데이는 해피가 낳은 새끼인데 골드리트리버 종이라 덩치가 컸다. 해피와 데이의 쫓고 쫓기는 놀이에 마당이 들썩거리면 105동 이층에 사는 또 다른 리트리버와 시베리안 허스키가 베란다로 나와 끙끙거렸다. 그러면 주인 여자가 개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아주 가끔은 리트리버 세 마리와 시베리안 허스키가 돌아다니는 마당에 푸들과 치와와가 주인의 품에 안겨 나왔다. 타운하우스에 생기가 도는 순간이다. 개들 때문에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풍경이 낯설고 괴이하지만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 잠시 웃었다. 우연히도 104동과 105동의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약속하고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 말고도 타운하우스에는 젊은 부부가 절반 정도 되었지만 모두 아기가 없었고,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타운하우스의 밤은 어둡고 고요했다. 그것은 마치 소리가 제거된 흑백의 세상 같았다. 그럴 땐 내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마을처럼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떡을 돌리며 집집마다 인사를 했다. 집안에 있다가도 말소리가 들려오면 후다닥 마당으로 내려갔다. 반갑게 말을 걸어보지만 상투적인 대화가 잠시 오고 갔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무관심이 그들의 얼굴을 딱딱하게 덮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그들처럼 변해갔다. 집 앞에 차가 세워져 있으면 안에 사람이 있으려니 했고, 여러 날 불이 꺼져 있으면 육지에 나갔으려니 짐작할 뿐이었다.

옆집인 107동 이층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살았다. 그가 몰고 다니는 트럭에는 집수리 장비가 실려 있었다. 밤이면 그의 집은 안방에만 불이 켜져 있을 뿐 두 개의 작은방과 거실은 언제나 컴컴했다. 사내의 앞 베란다에는 죽은 화분들이 쌓여 있었고, 심하게 녹이 슨 세 발 자전거가 난간에 기우뚱 기대어 있었다. 남편과 내가 이층 현관 앞에서 바비큐를 하고 있으면 퇴근하는 그를 볼 수 있었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만 까딱하고 모습을 감췄다. 그가 처음부터 혼자 산 것은 아니었다고 아래층 여자가 말해주었다. 함께 살던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떠나갔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사내의 삶을 생각했다. 바람 부는 밤이면 외로움에 지친 사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침에 사라졌던 차들이 저물녘에 돌아와도 타운하우스의 침묵은 견고했다. 도시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술잔을 기울일 시간에 여기저기 불빛이 사그라들었다.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이면 허술하게 지어진 타운하우스는 눈에 핏발 선 짐승처럼 웅웅거렸다. 앞 동 현관 센서등은 밤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바람에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정체 모를 불안감으로 내다본 마당에는 정적만이 사방을 할퀴고 있었다. 나의 일상은 도시에서나 섬에서나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의도치 않게 나는 타운하우스라는 섬에 고립되었다.

안개 자욱한 어느 자정 무렵이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애원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 소리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커튼 사이로 내다보니 101동에 사는 젊은 부부가 톤을 낮춘 목소리로 마당에서 싸우고 있었다. 남자는 회색 승용차에 올라타려 하고 여자는 필사적으로 남자에게 매달렸다. 뿌리치는 남자의 힘에 밀려 여자가 내동댕이쳐졌다. 그 틈을 타서 남자가 떠나버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먹이던 여자가 집안으로 사라지고도 나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부터 101동은 눈 내리는 들판에 덩그러니 옮겨놓은 불 꺼진 집 같았다. 초인종을 눌러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생각에만 머물렀다. 마당을 오가며 101동 앞에 회색 승용차가 돌아왔는지, 집에 불이 켜졌는지 살펴볼 뿐이었다. 나의 관심이 희미해질 때쯤 회색 승용차가 돌아왔다.

어느 날은 이 집에서, 또 어느 날은 저 집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큰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숨죽인 울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이사 온 지 반 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남편과 내가 크게 싸웠다. 늦은 밤에 집을 뛰쳐나가 바닷가 해안 도로를 헤맸다. 한참 후에 돌아온 나를 기다리는 건 불 꺼진 창문들이었다. 나는 타운하우스의 검은 그림자 속에서 길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새벽을 맞았다. 다음 날 마주친 이웃들은 전날 밤 싸움에 대해 누구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게 이곳의 불문율 같았다. 약속이라도 된 듯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내가 사는 세상이 거대한 급류 같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새도 없이 떠밀려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인터넷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무얼 먹는지 어딜 가는지 일상을 공유한다. 앞다투어 맛집을 소개하는가 하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서 찍은 여행 사진을 올린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삶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익숙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날마다 새로운 데일리룩을 입은 사진이 올라오고, 사생활이 연출된다. 수십만 명의 팔로우들은 상류층처럼 보여지는 모습에 열광하며 그들 또한 그런 삶을 원한다. 그들은 서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먹을수록 허기를 느끼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을 놔두고 먼 곳으로 눈을 돌렸다. 남편은 매주 시내로 나가 동인 모임에 참석했다. 나도 문학 강좌에서 만난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어울렸다. 한두 달에 사나흘은 육지로 올라가 이런저런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다. 시끌벅적 웃고 떠들고 관계를 돈독히 하고 돌아오지만 여전히 나는 외로웠다.

외출하려고 현관문을 열 때마다 마당 건너편에 서 있는 103동의 늙은 남자가 보인다. 내가 차의 창문을 내리고 인사를 한다. 어색하게 웃는 그의 눈꺼풀이 포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내 차가 사라질 때까지 멀거니 쳐다본다. 그는 병을 앓아 말이 어눌하고 걸음이 느리다. 아침 일찍 아내가 일을 나가면 표정을 잃어버린 얼굴로 현관 앞에 서 있다. 온종일 마당과 집안을 들락거리다가 아내가 퇴근하고 나서야 눈빛이 살아난다. 나는 감귤밭 옆에 서 있는 그를 만나기도 하고, 강아지풀을 흔들며 돌담길을 걸어가는 그를 지나쳐 올 때도 있다.

그를 보고 있으면 생의 마지막 시간 앞에 섰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자식들을 따라 사는 곳을 옮겨 다니느라 아버지의 노년은 낯선 곳에서 쓸쓸했다. 도시의 사람들은 아무도 아버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미래의 내 모습도 떠오른다. 빠르게 돌아가는 문명에서 튕겨져 나온 내가, 아버지나 103동의 늙은 남자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사는 타운하우스는 익명의 사회였다. 어느 날 104동이 이사를 갔지만 왜 이사를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몰랐다. 마당을 휘젓던 해피와 데이가 없어져서 타운하우스가 더 적막해졌을 뿐이다. 모두가 외로워 보이지만 모두가 아무렇지 않았다. 겨울에서 봄으로, 다시 여름이 끝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이웃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있어 길을 걸어가는 익명의 행인에 불과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익명성의 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진화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던 인식은 착각이었다. 진화가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만도 아닐뿐더러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이미 우리들은 익명이 주는 편안함에 빠져들었다. 익명이라는 침대에서 눈을 뜨고, 익명이라는 낯선 곳을 여행하는 자유로움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지금의 나만 해도 이웃들이 내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남편과 왜 싸웠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아마도 이웃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말 것이다.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 없는 세상이라면, 나는 다만 우리들이 익명의 사회 속에서 덜 고독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수상소감 - 진서우 >

지독한 우울에 빠져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등 떠밀려 사진동호회에 가입해서 사진을 접하게 되고, 여행작가학교를 졸업하고, 제주에 머물며 여행 에세이를 쓰게 되고, 결국 수필을 쓰기까지 이 모든 일이 불과 2년 반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뒤돌아보면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안이 벙벙하기만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오랫동안 버려두었던 저를 돌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경험을 겪는 것은 손해가 아니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저와 동행을 해 주었습니다.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어느 덧 글을 쓴다는 건 저의 삶이 되었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선택해 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이신 이광복 소설가님과 박철 시인님, 김포문학상의 위상을 높이고 발전시킨 김포문인협회와 박미림 회장님, 김포우리병원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저의 영원한 사랑이자 스승인 서상민 시인, 그리고 엄마가 힘들었을 때 든든한 친구가 되어준 아들 해강이, 딸 해인이에게 뜨거운 사랑을 전합니다. 변함없이 저를 응원해 준 신소영과 최기명, 여동생 진하경, 글담애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약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
이데일리 여행에세이 연재
원주생명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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