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는 벽

장대송


테두리가 없는 흥건히 젖은 거울 같은 벽에게 집착을 얘기했다
대나무처럼 서로 밀치며 재잘거리며 말했다
생각을 되새김질하며 살아온 사람이 하는 어수룩한 말도 해봤다
내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들은 얘기처럼도 해봤다
벽은 측백나무처럼 고스란히 앉아있다
내 안에서 오랫동안 되새겨서 만든 모든 말들이 남의 것이 되고 말았다
말 없는 벽이 말 잘하는 벽일 줄은 몰랐다
말 잘하는 벽 속, 먼지 날리는 길을 가로막는 이 비밀스런 기하학은 바보짓을 통해 통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난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는 몰라도 다만 궁금할 뿐인 지금,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장대송 프로필] 충남,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섬들이 놀다] 외 다수


[시감상]
벽은 오랫동안 들어주기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나는 벽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벽의 말을 들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 말이 벽에 반사되어 내게 들리는 날, 벽과 나의 대화법은 정답이 없는 문제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 속으로 과속하던 어떤 날, 다만 궁금할 뿐인 어떤 날, 내가 진정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날이 언제일지 궁금해지는 날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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