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재담을 끝내고 선주들과 함께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선조시대 때에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이곳에 와서는 제법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술을 먹을 때 슬픈 날이거나 기쁜 날에 먹는다는데 저는 뒤의 기쁜 날이라 먹습니다. 여기서 혹을 뗄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보슈, 그 이야기는 도대체 배우고 말하는 거요?”

한 선주의 말에 저는 혹을 툭툭치고 대답했습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그리고는 혹을 툭 치고 입을 열었습니다. 서비스 재담이지요.

“어떤 떡보가 있었습니다. 술은 안 먹고 떡만 먹는 바람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의논했더니 오늘 술 먹었다고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가서 술 먹었다고 했습니다. 몇 잔 마셨니? 물으니 다섯 개. 하는 바람에 떡 먹은 것이 탄로났답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바보이야기 등등을 꽁트식으로 몇 개 해주고 나왔습니다. 떡으로 배를 채우고 술도 여러 잔 얻어먹어 취해서 나왔습니다. 하늘을 보니 새벽이었습니다. 하늘에는 슈퍼문이 두둥실 떠 있었습니다. 김포 병원 의사 김우희가 나타날 것 같아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그냥 달 뿐이었습니다. 앞을 향해 걷는데 다리가 휘청거립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엎어지자 그냥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예쁜 아가씨가 보입니다. 그녀가 신기한 물건을 보듯 굽어보고 있는데 그녀의 뒤로 김우희가 나타났습니다. 아가씨가 뒤돌아보며 뭐라고 말합니다.

“풍문 아저씨, 왜 그렇게 누워 계세요? 보름달 보시는 거예요?”

나는 그냥 누운 채 대답했습니다. 술을 먹고 누워 있는 것이라고. 김우희는 입을 가리고 호호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아가씨는 이종 동생이자 김포병원장의 딸인 도미찜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실수로 꿈에서 조선 중기에 살던 아저씨와 소통하고 있다는 말을 했더니 자기도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어쩔 수 없었어요.”

김우희는 조심스럽게 변명하면서 도미찜 아니 김포병원 레지던트 도미진이 시베리아 횡단 중에 원주민의 혹을 떼는 수술을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수술할 때 흑요석으로 혹을 떼어내고 인두로 지지는 것도 그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의술이 빈약한 시베리아에서 옛날부터 전해 오는 수술법으로 혹을 떼어냈다니 풍문 아저씨 수술도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도미찜이 풍문 아저씨하고 말하고 싶다네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는데 이런 꼴이 볼썽사납지요. 얼른 자리에서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도미진이 내게 뭔가 말하는 것 같았는데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군요.

“소리가 안 들리네요.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김우희가 동생에게 뭐라 하자 그녀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김우희가 나와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전생이자 내가 흠모했던 아지(兒只)아씨였기 때문이지요.

“거기 앉아 뭐 하시오? 어디 아프시오?”

난데없는 소리에 바라보니 등불을 든 사람 몇이 보였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니 두 여자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꾸했습니다.

“술을 좀 마셔서 잠시 쉬고 있었소이다. 새벽에 어딜 가시오?”

“우리는 장사꾼인데 배를 타러 가려는 거요.”

하고는 다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뒤를 잠시 바라보다 나는 발길을 집으로 행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혹이 내 얼굴에서 떨어질 것입니다. 미래의 모습을 꿈에서 보면서부터 생긴 혹으로 해서 얼마나 열등감에 사로잡혔는지 모릅니다. 추한 모습으로 사느니, 혹부리라고 놀림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담으로 생계를 이으면서 토정 선생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혹을 떼면 어떻게 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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