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40 여 년 전에 내 친구가 미국 서부로 이민을 갔다. 그 친구의 형님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뒤인지라 형님 사업체 하나를 물려받아 쉽게 정착을 할 수 있었다. 4,5년 지나 고국에 신붓감을 물색하러 나온 그 친구의 행색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볶은 머리와 울긋불긋하게 달라붙는 흑인 청년복장의 패션으로 우리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 마치 미국을 다 접수한 것 같은 자신감 넘치는 화술은 그의 업체의 번창과 자신의 미국생활 정착이 성공 수준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 사정을 물으면 모르는 것이 없고, 기존에 우리가 알던 미국의 정보란 그 친구 앞에서는 엉터리이거나 거짓말로 낙인찍혔다. 그 친구가 본 미국이란 나라는 자기 의지를 뚜렷이 관철할 소신만 있다면 어떤 수를 쓰든지 거머쥘 수 있는 성공을 풍성하게 보장해주는 꿈의 나라였다. 친구는 이런 배짱과 노하우를 이미 다 터득한 것 같았다. 얼마 가지 않아 유명 사업가가 될 것이란 예측을 우리 모두는 서슴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을 간다면 반드시 그를 맨 먼저 만나야 할 것 같았다. 그의 삶의 방식은 우리가 따라야 할 전범이었다. 그러나 곧 와야 할 그의 역동적 성공 신화는 전달되지 않았고, 간간히 안부만 들을 수 있었다.

20 여년이 지나 2001년 여름방학 동안 나는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있는 클레어몬트 대학에 연구교수로 갈 기회가 있었다. 나는 친구를 수소문해 보았다. 공교롭게도 나를 마중 나온 한인교회 목사 사모와 나의 친구의 부인은 대학동기였다. 그래서 그 친구와 일단 통화를 하고 며칠 뒤 만났다. 나는 그의 바뀐 태도에 깜짝 놀랐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허장성세는 사라지고 아주 부드럽고 겸손한 사업가로 바뀌어있었다. 또 자신이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고지식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환골탈태하였다. 180도 달라진 친구의 모습이 신기하여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자신감 넘치는 사업으로 한국에서 하듯이 얼렁뚱땅 거짓말도 하면서 상당한 부를 쌓고 업체도 늘이면서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어느 날 친구는 미국의 세무 검열을 받았다. 세무서 직원은 친구에게 탈루한 일이 없는가를 물었고, 대강 거짓말로 얼버무리려 하는 친구 앞에 그간의 탈세한 목록을 들이밀었다. 법 없이 규칙 없이 돌아가는 듯한 미국사회의 다른 면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자유로운 나라의 체계가 겉으로 폐쇄적인 나라의 그것보다 더 정교하게 합리적으로 돌아가지만, 가능한 한에서 민주주의의 이념을 지키려고 자율을 택한다는 것을 현실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웃으면서 서명을 받아가는 세무서 직원의 친절한 유머와 여유는 며칠간만 유효했다. 이윽고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벌과금통지서를 받았다. 집과 가게를 모두 팔고 허름한 빈민가로 이주를 한 가족들은 부인의 직업으로 겨우 민생고를 해결했다. 그는 깨달았다. 미국은 탈법자가 살기에는 너무 잔인한 나라인 반면,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에게는 천국이라고. 그가 선한 양이 되었고, 인생의 고난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필귀정이란 처음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여 올바르지 못한 일이 일시적으로 통용되거나 득세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모든 일은 결국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가게 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의 표현으로는 사불범정(邪不犯正;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것이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한다), 인과응보(因果應報;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 종두득두(種豆得豆;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온다) 등이 있다. 이런 의미를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체험 없이는, 내 친구의 경우처럼 인정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이런 믿음으로 선하게 규칙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도리어 고지식한 바보라고 생각한다.

이제 문재인 정부도 말기로 접어들었다. 안타깝게도 이 정권의 사람들은 아직도 법과 질서와 바른 말을 무시하고 자기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말만을 믿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반면에 국민들은 그런 어리석음을 다 알면서도 의연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최근 국민의 마음을 달래준 대형 가수가 노래했듯이. “역사상 대통령이 임금이 우리를 지켜준 예가 있나요? 그러나 조금만 참읍시다!” 사필귀정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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