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몇 잔의 술을 들이켜니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흥이 나니 저절로 재담이 나옵니다.

“다음은 기생이야기입니다. 전라도의 상인 김철민이 배에 소금을 잔뜩 싣고 평양으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귀한 소금을 팔고 유명한 평양 기생 계향과 한바탕 놀아볼 속셈으로 떠난 것입니다. 배가 막 떠나려는데 동료 상인의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부인의 말로는 반년 전에 쌀 백 가마를 싣고 평양으로 간 남편의 소식이 끊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는 부인을 달랜 철민은 꼭 찾아보겠다고 약속하고는 배를 띄웠습니다. 바람을 타고 북으로 배가 힘차게 떠나자 친구를 찾겠다는 마음은 싹 사라지고 절세 미모의 계향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동업자가 재담에 나오니 기생들의 눈은 일제히 나를 향했습니다.

“색향 평양은 역시 달랐습니다. 고향에서 한량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철민도 이곳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오가는 기생들의 옷차림새와 미모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입니다.”

내가 눈을 벌렁 뒤로 까뒤집자 기생들이 여기저기서 까르르 댑니다.

“계향의 집에 들어서니 정원을 잘 꾸며 놓았고 그를 맞이하는 기생어멈도 예전에 이름난 기생이었다고 합니다. 철민이 큰소리칩니다. 내가 배 한 척의 소금을 모두 드리리다.~”

철민은 계향을 만나보니 정말 절세미녀였습니다.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목소리 또한 옥구슬이었고 몸에서 풍기는 향내에 아찔했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할 때는 손발이 오그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세 사람은 약조를 맺었습니다. 소금을 모두 처분한 값으로 한 달 동안 계향과 함께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날 밤 철민은 황홀한 첫날밤을 치르고 다음날부터는 계향과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평안 감사의 잔치를 비롯해 관리들의 부름에 가야 한다고 몇 시간씩 자리를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평양 시내를 다니다 물지게를 지고 가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반가워 얼싸 안았지만, 아내가 소식을 궁금해하고 있다는 말에 앞으로 두 달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까닭을 물으니 얼버무리며 나처럼 되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고는 물지게를 지고 사라졌습니다. 한 달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계향을 밤새 끌어안고 일어난 철민이 세수하고 났는데 기생어멈이 부릅니다.

“서방님, 이제 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더 있으려면 돈을 내야 하고 돈이 없으면 하룻밤에 한 달 동안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것이 평양 기생방의 규칙이라고 했습니다. 그제야 친구가 물지게 지는 하인 일을 하는 까닭을 알았습니다. 할 수 없이 계향의 방으로 들어와 아쉬운 작별을 하려는데 계향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합니다. 이별의 선물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철민에게는 고향에 갈 여비밖에 없다고 하니 그러면 이빨이라도 하나 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한 달의 짧은 사랑이었지만 모든 것을 바친지라 온 힘을 다해 생니를 뽑아주고는 계향의 집을 나와 대동강에서 배를 타려고 기다렸습니다. 웬 남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으니 기생과의 아쉬운 작별을 하고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버럭 남자를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앞니가 빠진 것을 보고 까닭을 물었습니다.

“한 달 동안 함께 한 기생 계향에게 이별의 선물로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향이라는 말에 놀라서 캐어 보니 자신은 오전반이었고 남자는 오후반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철민이 다시 돌아와 뺀 이빨을 내놓으라고 하니 계향이 비웃는 웃음으며 화장대 문을 열고 소리쳤습니다. 이 가운데 당신 이빨이 있으니 찾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손짓 발짓을 하며 계향의 목소리를 흉내 냈는데 기생들 표정이 냉담했습니다. 자신들의 영업비밀을 그대로 노출했으니까요. 하지만 자리에 앉은 고관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이 몸을 팔아 사는 기생들이 참모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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