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8월을 대표하는 하루를 꼽으라면 당연히 광복절(15일)이다. 광복절 75주년을 맞았다. 사람이 75세이면 완숙한 노년으로 감정과 의지 그리고 지성이 무르익을 대로 익는다. 미숙과 경거망동이나 편견과는 거리가 먼 어른이다. 푸근하게 사물을 있는 대로 보고, 남의 부족을 넉넉히 품는 원숙을 보인다. 사실 앞에 고개를 숙이고 꾸밈을 버리는 단순한 태도로 살아간다. 당연히 광복절 75주년의 기념이 이래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정치가들의 지도력 부재로 올해는 사분오열된 모습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이 바랬다.

광복(光復)이란 빛을 다시 찾았다는 뜻이다. 일제의 식민지하에서 어두운 지배의 그늘을 걷고 마침내 빛을 찾은 사태를 가리키는 말이 광복이다. 일제의 어둠 속에서는 사태를 사실대로 보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광복을 맞았던 1945년 8월 이후의 삶은 같은 햇빛 아래서 살아왔건만 여태 서로 다른 소리와 견해로 갈라지는 사회의 모습을 보며 과연 우리 모두는 같은 광복으로 세상을 75년 살아왔는지 의심이 든다.

먼저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한 번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동굴에 갇힌 죄수와 같다. (아마 플라톤 시대에는 죄수들을 동굴에 가두고 비인간적인 취급을 한 모양이다.) 죄수는 사슬에 묶여있다. 등 뒤에는 횃불을 켜 놓았는데, 뒤를 돌아볼 수가 없다. 죄수는 오직 눈앞에 비친 그림자만을 볼 수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죄수는 자기가 보는 것만을 전부라고 생각한다. 아마 수년간 독방에 수감된 사형수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실제로 죄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단편적인 경험과 그것이 엮어내는 상상에 불과하게 된다. 얼마 후 감금을 풀어주면 죄수는 동굴 어귀에 나와 강렬한 햇빛과 익숙하지 않는 다채로운 사태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다시 동굴 안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 충격적인 순간이야 말로 자기가 참된 사실을 부닥치는 계기이므로 자기의 편견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괴로움을 무릅쓰고 뛰쳐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플라톤이 강조하는 것은 자기의 감감과 상상을 버리고 사실과 마주할 용기를 마주하라는 것이다. 그림자만으로 익힌 자기중심의 편견(지식이 아니라)을 과감히 버리고 제대로 된 사실을 자기에게 충격이 되더라도 정직하게 수용하라는 말이다. 그럴 때 광복은 제대로 이뤄져 비로소 진실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1945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리고 정직해져 보자. 우리는 진정 우리 민족 스스로가 광복을 만들었던가? 어떤 독립운동사가들은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우리는 그럴 능력도 없었고, 준비도 부족했다. 일본과 미국의 밀약으로 조선반도가 동강나게 한 귀결이 그것을 말해준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광복은 연합군의 승리로 주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합군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것은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동시에 우리의 약함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바로 힘을 민족 모두가 힘을 모아 강한 나라를 만들었어야 한다. 그러나 못나게도 지도자들이 강대국을 등에 업고 동족상잔의 동란까지 일으킨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후로 네 탓 내탓하면서 좌우로 갈라져 지금까지 국론분열까지 부추기는 정객들은 한심한 미숙성을 보인다. 이제는 이런 한국의 광복관은 수정되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 한반도의 발전과 국격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가치관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 우선 모든 편견과 이념 그리고 허상을 배격하고 사실을 제대로 정직하게 헤아려 보자. 적어도 세계사와 세계정치사의 입장에서 우리의 현실을 짚는 용기가 필요하다. 단순히 우리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단편적인 시야에서 벗어나 세계적 리더로서 새로운 질서와 기준을 제시하는 견실한 가치관을 함양하자. 동시에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중시하는 실질적 안목을 길러야 한다. 국내외적으로 불필요한 증오를 부추기기보다는 화해를 앞세워 보다 진취적인 기상으로 미래 세계관을 확립하는 아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진리를 관념보다 앞세우는 철저한 실용주의적 태도로 약소국의 장벽을 넘어서는 기개를 키워 새로운 광복을 펼쳐가야 한다. 한반도의 기운이 용트림하는 성숙한 광복절을 만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