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재담이 끝나자 눌재 영감과 토정 선생, 양동이 그리고 저는 각기 독상을 받았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날 때까지 양성지 영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제 꿈에 본 서울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코로나 19인지 뭔지 하는 전염병 때문에 어린아이까지 마스크를 쓰고 다니더군요. 지하철도 버스도 마스크 안 쓰면 승차가 안 됩니다. 그러나 지금 양성지 영감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높은 벼슬아치 양반이 체면 살리려고 밥 먹는 것에만 열중하는 게 아닙니다. 말을 더듬는 사람이 입에 먹을 것을 넣고 말을 하게 되면 온통 튀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밥상을 물리고 나자 양성지 영감은 토정선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토, 토, 토정, 선생! 내, 내.”

토정 선생이 다음 말을 벌써 알고 얼른 대답했습니다.

“네, 영감. 말을 더듬는 이유를 이제 알았으니 치료할 수 있습니다.”

토정 선생이 자신 있게 말하자 내가 어쩔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이 오십까지 말을 더듬던 사람을 어떻게 원상복귀 시킨다는 말입니까. 눌재가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 숙여 절했습니다.

“고, 고, 고 마, 맙, 소.”

나는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정말인지 아닌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급히 물었습니다. 정말 고칠 수 있겠느냐고요. 자칫하면 이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물론이지. 아주 어렸을 때 애완견이 잡혀 먹는 것을 보고 말을 더듬은 것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목 주위에 이상을 가져왔어. 자세를 바로 하고 발성 연습만 하면 고칠 수 있어.”

아, 그래요. 나도 모르게 감탄했습니다. 조선 팔도를 두루 다녔고 천문, 지리, 풍수, 산술, 점술 모르는 것이 없는 토정선생입니다. 그러니까 21세기에도 그 명성이 남아 있는 거겠지요.

“내일부터 눌재에게 교정훈련을 시킬 거야.”

“그러면 완치하려면 얼마 정도 걸릴까요? 일 년 정도 걸리나요?”

“일 년은 무슨. 빠르면 하루 길어도 열흘이야. 풍문, 여기가 맘에 드냐? 눌러앉고 싶어?”

저는 뜨끔했습니다. 재담꾼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어 여기저기 부르는 사람이 많아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발발 일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네 맘 나도 알고 있다. 걱정마라. 아모르파티라고 아느냐?”

어디서 들어본 말입니다. 아, 그렇다. 김연자 노래였지. 꿈에서 망토 휘날리며 춤추는 가수다.

“네, 알고 있습니다. 김연자가 부른 노래 제목이지요. 근데 왜?”

토정 선생이 잠시 혀를 찹니다. 나이 오십을 뭘로 먹었느냐는 표정입니다.

“아모르파티는 운명애라는 말이다. 어차피 겪을 운명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아, 원래 그런 뜻이군요. 전 또.”

“너와 내가 만나고 죽은 내가 다시 살아나서 여기 온 것도 다 운명인 거다. 눌재는 고친다.”

토정 선생이 고친다고 말했으니 눌재 양성지 영감의 말더듬은 고칠 수 있겠지요. 조선의 제도를 완비했다는 눌재, 단군을 국조로 모시자고 주장하고 국방과 지리에 탁월한 지식과 안목을 지녔던 분. 나중에 성종이 이 분의 말을 들었다면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영감은 우리가 미래에서 왔고 몇백 년 뒤의 일도 다 겪어 보았는데 그것은 묻지 않지요? 그것도 아모르파티인가요?”

“암. 어차피 닥쳐올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거야.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여서는 안 돼. 자신을 연마할 기회로 삼아야지. 그것이 진짜 운명애인 거야.”

이런 오묘한 말씀을 제가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선생이 지었다고 알려진 토정비결에도 아무리 용한 점괘도 무조건 따르지 말고 좋은 날을 기대하며 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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