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김선달이 앞에 가는 아가씨를 불러 세웠습니다. 아가씨는 영문을 몰라 하는데 김선달이 몇 마디 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한 얼굴로 바삐 집으로 향했습니다.

김선달은 청년의 집으로 갔습니다. 울적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던 청년에게 김선달은 한참동안 말을 나누었습니다. 청년도 처음에는 뚱한 표정이더니 나중에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풍수쟁이라 하고 이번에는 부잣집으로 가서 주인을 만나려고 청했습니다.

“주인 양반은 터를 잘 잡으셨습니다. 재물이 쌓여 부자가 되신 것은 다 터를 잘 잡은 덕분입니다. 명당, 명당 하지만 좋은 운세의 팔 할은 집터에 있고 나머지 이 할이 묫자리입니다.”

김선달이 풍수의 용어를 쓰면서 좔좔좔 늘어놓자 주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선달은 청년에게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말을 꾸민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주인은 김선달의 말재주에 넘어가 아들에게 향시를 보게 대구로 보낸다고 말합니다. 보나 마나 떨어질 것이지만 양반의 아들로 과거를 안 보게 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또 머저리라 먼 길 가다가 봉변이나 안 당할까 걱정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김선달은 동네 수재인 청년을 동행을 시켰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인은 기뻐하며 허락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청년은 잔뜩 돈을 지니고 머저리와 대구로 향했습니다. 평민 복장을 하고 뒤따르던 선달이 두 사람을 불러 세웠습니다.

“선비님들은 어디를 가시나요?”

선달의 물음에 청년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답합니다. “향시 응시하려고 대구 감영에 갑니다.”

“그래요? 나도 향시를 보러 가오. 그래서 내가 변장을 했소이다.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요.”

김선달은 대구 감영에 가는 선비들을 노리고 강도가 극성을 부린다고 말했습 니다.

“돈을 빼앗는 것은 물론이고 반드시 주인의 목도 벤다 하오. 말을 끌고 가는 구종이 살아와서 전한 말이오.”

그의 말에 말 등 위의 머저리가 부들부들 떱니다. 김선달이 청년에게 눈을 찡끗하자 청년이 입을 열었습니다.

“대구로 가는 길에는 강도가 많은데 구종은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주인만 목을 벤다는데 어찌하겠습니까? 서방님께서는 내 옷과 바꿔 입읍시다.”

청년의 말에 머저리는 “어마 뜨거라”하고 말에서 내렸습니다. 할 수 없이 머저리는 말에서 내려 옷을 바꿔 입고 청년이 말을 탔습니다. 준수하게 생긴 청년의 용모에 행인들이 칭찬하자 머저리는 배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중간중간 주막에 들러서 밥을 먹을 때도 청년과 김선달은 마루 위에서 먹고 머저리는 가마니 위에서 먹어야 했습니다.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어서야 대구에 도착한 머저리는 청년에게 당장 옷을 벗으라고 호통치고는 자기 혼자 밥을 먹고 큰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습니다. 주모에게는 늦게 일어날 테니 깨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청년은 어이가 없었지만 시험 보는것을 포기한 것이니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국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는 복면을 하고 방에 들어가 쿨쿨 자는 머저리를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한글 편지로 인생이 불쌍해서 목은 베지 않노라 하고는 돈을 몽땅 털어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깬 머저리가 놀라 소리치려 했지만, 입에 재갈이 물려있어 꼼짝도 못하고 저녁때까지 있었는데 풍악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청년이 방문을 열었습니다.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고는 머저리를 풀어주며 자신이 향시에 장원급제한 것을 알렸습니다. 머저리는 배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향시에서 장원한 청년은 그 뒤로 부잣집에 청혼해서 사위가 되었습니다. 머저리는 어찌 살았을까요. 평생 그렇게 살다가 죽었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시원치 않은지 양성지 대감은 고개만 끄덕했을 뿐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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