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중3 담임 선생님들이 졸업식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해 왔다. 공연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015B’의 ‘이젠 안녕’이란 노래를 3학년 담임들이 돌아가며 부르는 것이 전부다.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표정 속에 서로 말 놓기가 어려워 망설였지만...”

나는 ‘이젠 안녕’이란 노래의 맨 앞 파트를 맡았다. 대학시절부터 즐겨 부르던 노래라 특별한 연습 없이 노래에 임했다. 하지만 난 첫 구절을 미쳐 다 부르지 못했다. 가사를 잊은 것도, 박자를 놓친 것도 아니었다. 무심코 눈을 돌려 바라본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아니 그 녀석이 울고 있었다.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띌 만큼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갑자기 나도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난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우느라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왜 그리 울었을까? 녀석이 나와 아주 각별한 사이였던가?

녀석은 손에 문신을 하고 있었다. 예쁜 문양이나 멋진 글귀가 아닌 자신의 이름 중의 한 글자를 새겨 넣었다. 중2 때 호기심으로 해 본 거라 했다. 1, 2학년 때 사고를 좀 쳤는지 선생님들이 한 마디씩 하신다.

“철진이만 사고 안치면 선생님 반은 일 년 동안 조용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해 우리 반은 그리 조용하진 않았다.

상인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3학년 가을부터 물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거부했다. 70kg이 넘던 녀석이 30kg 중반까지 살이 빠졌다. 정말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였다. 3학년이 시작되자 검단에서 전학을 온 의찬은 전학 첫날부터 친구들과 힘겨루기를 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사춘기 소년의 방황으로 인한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지각과 조퇴가 잦아졌다. 오히려 철진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녀석이 우리 반이던 그 해는 개인적으로 학교생활에 대한 피로감으로 교직에 대한 회의가 아주 강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예년보다 학급활동도 많이 부족했고, 아이들과 교류가 많지도 않았다. 심지어 말썽 한번 피우지 않았던 아이들과는 학기 초에 이루어진 상담이 전부이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철진과의 상담 역시 학기 초 이뤄진 상담이 전부였다.

2014년 연구년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왔다.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만나는 아이들마다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런데 철진이 얼굴을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에게 철진이를 수소문해 보았다. 작년에 유예를 당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다시 학교에 다닐 생각은 있지만 아직 결심을 하지 못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철진과 친하게 지내던 다른 녀석들을 통해 철진이를 불렀다. 철진이와 상인이, 그리고 우영이도 함께 만났다. 녀석들의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했지만, 담배 냄새를 진하게 풍겨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철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수업 일수 부족으로 학적유예를 받았다. 상인은 요리사를 꿈꾸며 진학한 학교에서 잘 적응을 하지 못했다. 다시 인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으나 적응이 쉽지 않아 학교를 그만뒀다가 작년에 1학년으로 재입학을 했다. 우영은 중3 때 복학을 했다가 수업일수 미달로 학적유예를 받았고, 이후 잘못을 저질러 교도소 복역 중에 검정고시를 치렀다. 아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조금만 버텨보자고 부탁했고, 아이들 역시 올해를 잘 넘겨서 내년에 꼭 졸업하겠다 다짐을 했다.

2016년 가을, 페이스북에서 철진을 만났다.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이라 현장실습을 나갔고 사장님이 너무 좋다고 했다.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 공장 근처에 원룸도 잡았으니 시간 되면 한 번 들리시라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조금 있으면 졸업이라 자기는 일찍 취업해서 열심히 돈을 벌고 싶다고 인생계획도 세웠다. 페이스북을 통해 바라보는 철진은 열심히 살고 있는 듯해서 기분이 참 좋았다.

그해 겨울 상인을 통해 철진이 소식을 다시 듣게 됐다. 철진이 졸업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철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나에게 얘기해 주지 않는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구속되어 교도소에 갈지 모른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을 아무도 이야기해 주질 않았다.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

의찬에게 카톡이 왔다. 철진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듯했다. 짐작대로 철진이는 교도소에 갔다고 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어지지 않았다. 취업 나가서 열심히 산다고 얼마 전까지 나에게 자랑도 했는데...

올 여름 의찬과 면회를 다녀왔다. 그 곳에선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불리고 있었다. 면회신청서에도, 영치금 접수하는 곳에서도 ‘철진’이 아닌 번호 ‘1717번’.

면회접수를 마치고 기다리길 30여 분, 점심시간이라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기다리다 보니 드디어 전광판에 철진의 번호가 보인다.

‘1717-5번 면회실’ 핸드폰을 보관하고 신분 확인 후 면회실에 들어갔다. 갈색 옷을 입고 있는 철진이 유리창 건너편으로 보인다.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하며 반가움을 표현한다. 10분간의 면회시간에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정말 잘못한 거 맞는데요. 억울한 것도 많아요. 지금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2년 전의 일 때문인데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여러 사건이 마치 하나의 일처럼 이야기 되고 있어요. 제가 나이가 많아서 구속 수사를 받다 보니, 같이 잘못한 애들 몇 명이 제가 모든 것을 시켰다고 이야기를 해요.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억울해요.”

“변호사는 구했어?”

“1차에는 사장님이 구해주셨는데, 이번에는 국선변호사예요.”

“아버지는? 동생은?”

“온다곤 했었는데 아직이예요.”

“뭘 좋아할지 몰라서 영치금 넣었어. 맛있는 것 사먹고, 건강관리도 잘하고...”

마이크가 꺼졌다. 10분간의 만남을 위해 3시간을 달려왔는데, 허탈했다. 하지만 철진의 얼굴을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잘못했지만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절실히 하고 싶었을 녀석을 생각하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철진아! 선생님은 네 편이야. 선생님이 널 믿는단다. 모두 잘 될 거야.”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철진이는 내 맘 알고 있으리라 믿으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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