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흔히 인생을 삼등분한다. 크고, 배우고, 준비하는 30년, 직접 일에 참여하는 30년, 일에서 물러나서 30년, 산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나는 세 번 째 등분을 시작하였다.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많
은 생각을 하였다. 그 중에서 으뜸은‘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였다. 이점에서 내 생각은 인생의 궁극적 목표란 행복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와 같다. 내린 내 행복관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의 분복을 인정하고, 거기에 만족하며 사는 게다.

한 인간의 출생은 무궁한 가능성 속에 일부로 선택된 것이다. 내가 태어난 1954년 1월 14일 저녁 한국의 한 산골마을은 대단히 특수한 선택지였다. 그 당시만 해도 지구에 100개 이상의 나라가 있었으니까. 동시에 적당히 흔한 성씨인 신가 집안에 8번째인가로 태어나다니……. 나의 생의 시작점은 정말 우연적 좌표를 가졌었다. 그러나 태어난 순간 나의 생은 이미 필연적인 과제를 받은 것이다. 부모의 도움을 받든, 형제나 친지의 후원을 받든, 환경의 배경을 통해 내 삶은 행복해야 하는 삶을 명령받은 것이다.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현대철학자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네 삶은 형식을 갖는다. 이 형식은 놀이의 형태로 되어있다. 놀이는 다양하다. 장기놀이, 바둑놀이, 체스게임이 있는가 하면 공놀이도 있다. 공놀이에도 농구, 배구, 야구, 축구, 수구 등이 있다. 목적도 제각각이다. 규칙도 다르다. 손을 쓰는 농구나 배구가 있고, 발을 쓰는 축구와 족구가 있다. 손을 쓰는 농구에서 발을 쓰는 것은 반칙이고, 발을 쓰는 축구에서 손을 쓰면 벌칙을 받는다. 여기에서 손을 쓰느냐 발을 쓰느냐는 개인이나 경기자의 취향이 아니라, 경기를 선택하는 순간 동시에 결정된다. 경기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임의적이지만 결정하는 즉시 그 경기가 가진 규칙을 따르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경기의 형식이다. 이런 점에서 놀이는 독자성을 가지며, 이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 이런점 에서 우리 인생은 놀이와 같다. 내가 어떤 인간으로 태어나서,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그것으로 살아가겠다고 선택하는 순간 운명적이 된다. 인생에서 행복을 실현하는 것은 바로 이 우연적 운명이 곧 나의 삶의 형식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놀이를 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려면 하는 놀이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 규칙을 숙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놀이의 기본에 불과하다.

놀이의 재미는 인생의 행복에 비유된다.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놀이에 숙련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은 대체로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영국 프리미어 리거에서 최고선수로 성장한 손흥민의 동작은 아버지의 성실한 지도로 축구공에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을 ‘본능적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익힌 결과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주 “축구를 즐겁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의 행복은 자기가 얼마짜리 연봉을 받는가가 아니라, 경기에서 매번 출전 하도록 지명 받기에 충분한 전문성을 인정받는데 있는 것이다.

전문성을 키우면 즐거움이 따라오지만, 전문성을 획득하려면 자신의 목표에만 집중하면서 달콤한 유혹을 끊어야 한다. 나는 30대 배고픈 대학 강사 시절을 보냈다. 두 명의 아이까지 둔 처지에 강의가 없는 방학에는 영어학원 강사로 민생고를 해결해야 했다.

딱한 처지를 안 학원원장은 오전과 저녁에 강좌를 배려했다. 학생이 없는 오전시간은 급료가 적었고, 저녁에는 학생들이 넘쳐 3~4배의 수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두 시간대를 다 뛰면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저녁시간을 포기했다. 또, 저녁시간을 택해 돈 맛을 들이면 대학교수 되기는 힘들 것 같아, 배를 곯는 고행을 자청하였다. 몇 년이 지나 결국 나는 교수가 되고, 반대를 선택한 내 동료들은 학원 강사로 전전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물론 돈 많이 버는 학원 강사로 성공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농구선수(학원 강사)가 아니라 배구선수(교수)로서 성공하고 싶었을 뿐이다.

원하는 배구선수는 되었지만 유능한 선수는 되지 못하였다. 내 역할은 가난한 여건에서 목표로 하는 구단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는 배구선수 마냥 그런 정도에 만족한 교수로서 직장을 물러났다. 남은 생애에 그간의 아쉬움을 메꾸며 살고, 그것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조물주께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행복은 내 만족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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