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저의 재담에 보부상들은 술렁거렸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이야기는 한 달전에 실제로 전라도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보부상들도 바람결에 어느 양반 댁에 강도가 들었다는 말만 들었는데 내가 상세하게 말하니 놀란 것입니다. 누군가 소리칩니다.

“재담꾼 어른, 우리도 강도 든 것은 며칠 전에 알았는데 어찌 알았다는 거요?” 그 물음에 당황했지만 이럴 때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것이 최고의 대책입니다.

“하하하. 여러분 바람은 미풍이지만 저는 태풍처럼 소식이 전해 옵니다. 제 이름이 풍문 아닙니까? 저처럼 오래 재담을 하다 보면 고수가 되지요. 다음은 도둑질의 달인 이야기입니다.” 나는 꼬치꼬치 물을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습니다.

“유명한 도둑이 있었었습니다. 신출귀몰한 솜씨로 도둑질하면서 한 번도 잡히지 않았지만, 병이 들어 은퇴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이때 도둑질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이 매일 찾아와서 졸랐지만, 도둑달인은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그날부터 그 집에서 밥하고 장작패고 온갖 궂은일을 했습니다. 몇 달 동안 노력봉사를 함에도 도둑질의 달인께서는 말도 섞지 않았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집으로 갈 텐데 끈질긴 청년은 도둑질로 대성하기 위해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도둑 달인이 그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도둑질을 배우고 싶으냐?” “네, 저는 스승님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 최고의 도둑이 되겠습니다.” 청년이 굳은 결의를 내보이자 도둑은 그를 데리고 어느 부잣집을 털기로 모의 했습니다. 달빛마저 가린 캄캄한 밤에 스승은 제자를 데리고 담을 넘어 헛간에 스며들었습니다. 청년은 그곳에 보물이 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쌀과 보리 등 곡식과 커다란 왕골 바구니만 놓여있었습니다. 스승은 바구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고는 철컥하고 잠그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난감한 것은 청년이었습니다. 아무리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해도 열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그러다가 지쳤는데 발소리가 들립니다. 숨죽이고 들어보니 아마도 하녀가 쌀을 가지러 온 것 같았다. 그때 머릿속이 반짝했습니다. 그는 바구니 안을 긁었습니다. 그 소리에 하녀가 쥐가 숨어 있는 줄 알고 열쇠로 문을 열자 청년이 콩알 튀듯이 뛰쳐나갔습니다.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진 하녀는 정신을 차리고 도둑이야!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습니다. 담장을 넘어 도망치려던 청년이 휘휘 둘러보니 우물이 보이자 얼른 커다란 돌을 집어 우물 속에 던졌습니다.

풍덩!

“하인들은 도둑이 우물에 빠진 것으로 알고 횃불을 만들었습니다. 마루 밑으로 들어간 청년은 부산한 틈을 타 기어서 문까지 갔습니다. 캄캄한 밤이라 그 집 개가 가는 모양이었지요.”

간신히 집을 빠져나온 청년은 도둑의 달인을 찾아가 항의했습니다. “아니, 스승님. 어떻게 저를 골탕먹이십니까?” “골탕? 나는 오늘 너에게 도둑질의 비법을 가르쳐 주었느니라. 네가 쥐 흉내를 내어 바구니를 빠져나오고 우물에 돌을 던져 하인들의 귀를 속이고 개 흉내를 내어 눈을 속인 것이 아니냐.”

청년은 그제야 도둑질의 달인이 자신에게 도둑비법을 전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도둑질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스승의 은밀한 비밀도 알게 되었습니다.”

도둑질의 달인은 실은 의적으로 그가 노린 집은 부패한 관리나 악덕상인의 집으로 재물을 훔친 다음에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청년은 스승이 얼마 뒤 병환으로 죽을때까지 모셨는데 한 권의 수첩을 주며 말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줄 것은 이 수첩밖에 없다. 여기에 네가 도둑질할 집안의 물품과 숨겨둔 장소가 있다 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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