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토정 선생님이 보시던 삼국유사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신라 21대 소지왕때 있었던 신비로운 일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에, 어느 날 소지왕이 부하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쥐 한 마리가 왕 앞에서 사람 소리를 들으며 ‘저 까마귀를 따라오세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입을 오물거리며 쥐가 말하는 시늉을 하자 노비들은 까르르 웃었습니다. 사실 제가 원통 훈장과 다른 점은 이렇게 재담을 극화하는 것입니다. 꿈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많이 본 덕분이겠지요. 어쨌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쥐가 말을 하니 이상하게 여긴 왕이 고개를 들어보니 까마귀가 보였습니다. 왕은 부하 장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참 만에 어느 연못에 도달했습니다.

“그때 물에서 쑤욱 어느 노인이 나타나 장수에게 한 장의 봉투를 건네주고 뭐라고 하곤 또 쑤욱 들어갔습니다. 장수는 그 편지를 가져다가 왕에게 받쳤습니다. 열어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 금. 갑. 거문고가 들어있는 갑에 화살을 쏘아라. 이런 말이죠.”

아니, 화살은 사냥감에게 쏘는 것인데 거문고갑에 쏘라니요? 그런데 장수가 말을 덧붙입니다.

“노인이 말하기를 화살을 쏘면 두 사람이 죽고 쏘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했습니다.”

왕이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지’하자 일관(日官)이 반대합니다.

“아니되옵니다. 그 한 사람은 임금님을 말하는 것이니 화살을 쏴야 합니다.”

별 보고 점치는 일관 말에 왕은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그때 궁 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왕이 사냥 간 틈을 타서 왕비가 궁에서 기도하는 스님을 잠자리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왕이 돌아오자 놀란 왕비는 스님을 거문고갑에 숨겼습니다. 왕이 침실로 들어와 보니 왕비의 행동이 수상합니다. 그러자 벽에 세워진 거문고갑을 보고는 화살을 쏘았습니다.

“그랬더니 비명과 함께 거문고갑이 열리면서 알몸이 된 스님이 쓰러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이 놀라며 왕비를 추궁하니 두 사람이 간통하며 장차 왕을 죽이고 임금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는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왕은 왕비를 처형했으니 노인의 말대로 거문고갑에 화살을 쏘았기 때문에 반역음모를 캐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손짓, 발짓을 하며 재담을 끝냈는데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원통 훈장이 맨 뒤에 서 있었습니다. 내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훌륭하오. 청지기에게서 재담꾼이 있다기에 누군가 했더니 선생이시구려.”

표정을 보니 정말 감탄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훈장을 경쟁자로 여겼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재담이 모두 끝나자 노비들은 모두 잠을 자기 위해 돌아갔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훈장님. 바쁜 일이 없으시면 우리 선생님을 뵙고 가시지요.”

“선생님이라면 토정이라는 분입니까?”

청지기에게서 우리에 대해 들은 모양입니다. 둘은 토정 선생의 방으로 걸어갔습니다.

“듣기로는 세 분은 모두 다른 세상에서 온 분이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몇 백 년 뒤에 살았던 사람들로 지금 시대로 온 것입니다.”

원통 훈장이 침묵했습니다. 지성안에게 우리가 미래 세상에서 온 사람이고 우리 모두 몇백 년 뒤를 꿈을 통해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토정 선생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은 모를 것입니다. 미래에서 온 것, 몇 백 년 뒤를 내다본다는 것도 기가 막히는 일인데 죽은 사람이 돌아왔다고 하면 기절초풍할 것입니다. 원통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기이한 분들이니 눌재의 말더듬을 고칠 수 있겠군요.”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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