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걱이 설 때
송진권
처음엔 싸게 불을 피우면서
눌어붙지 않게 주걱으로 잘 저어줘야 햐
눌커나 타면 화근내가 나서 못 먹어
계속 천천히 저어줘야 햐
딴전 피거나 해찰부리면 금세 눌어붙어 못 써
뒷간엘 가도 안 되고 잠시잠깐 자리를 떠도 안 되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여
땀이 쏟아져도 젓는 걸 그만두면 안 되야
오직하면 이게 땀으로 만든 거라고 안 햐
시방이야 가스불로 하니께 편해졌지만
예전에는 혼자 불 때랴 저으랴 아주 대간했지
내굽기는 또 왜 그리 내군지
눈물콧물 쏙 뺐어
되직하니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면
뭉근하게 불을 죽이고 뜸을 들이는 겨
그래 다 되었다 싶을 때
주걱을 세우면
주걱이 바로 서는 거여
그럼 도토리묵이 다 쑤어진 거여
[프로필]
송진권 : 충북 옥천, 2004 창작과 비평 등단, 시집 [자라는 돌]
[시 감상]
주걱, 밥을 푸거나 도토리묵을 젓거나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걱이 선다. 어떤 경계를 알려주는 주걱이 서는 일. 되직하게 쑤어진 죽, 그 한 없이 물컹한 속에서 몸을 세운다는 것. 그래서 하나의 죽이 완성된 것을 알려주는 경계의 경계. 늦가을 나도 내 몸 속에 무언가 경계를 알려주는 주걱을 만들어야겠다. 이만큼 휘젓고 살았으니 인제 그만, 다 쑤었다고. 편안하게 쉬라고. 쉬면 더 갈 수 있다고.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김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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